
“어떻게 오셨습니까.” “로또 당첨금 받으러 왔습니다.”
한 미얀마인이 유창한 한국어로 답했고 옆에 있던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A씨는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의 품속에는 이틀 전 발표된 제694회차 나눔로또 당첨번호인 ‘7, 15, 20, 25, 33, 43’이 ‘적힌’ 로또 용지가 있었다. 이 회차에서 ‘대박 행운’을 차지한 10명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당첨금만 15억553만6388원. A씨는 국내 거주 기간이 6개월을 넘어 국내 소득세법에 따라 내국인과 동일한 세율 33%의 세금을 제하고 10억870여만원을 손에 쥐게 됐다. 현행 복권법상 외국인은 내국인과 똑같은 당첨 혜택을 누리며 여권이나 외국인 등록증만 있으면 당첨금을 받아갈 수 있다.
A씨는 농협 관계자와 상담에서 “전액을 고국에 송금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금융권과 거래가 가능한 미얀마 은행은 두 곳뿐인 데다 그는 해당 은행의 계좌도 없었다. 새로 계좌를 개설하려 해도 한 달가량 걸린다는 얘기에 낙심한 A씨에게 농협 측은 ‘특급송금’(1일 송금 상한 7000달러)을 제안했다. 이틀 동안 1만4000달러를 송금한 그는 결국 계좌 거래를 포기하고 현금 수령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10억원이란 돈을 한 번에 가지고 가자니 불안했다. 농협 관계자는 “A씨가 3주에 걸쳐 매일 오후 은행에 나와 당첨금을 받아갔다”며 “그분은 ‘코리안 드림’을 이룬 것 같다”고 웃었다.

21일 나눔로또에 따르면 2007년 12월10일(로또 복권 2기 수탁사업자 선정) 이후 지난달 말까지 8년여 동안 로또 복권에 당첨된 외국인은 총 2만7572명이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2만6020명, 비거주자(여행 및 단기방문)는 1552명이었다. 외국인 1등 당첨자 중 최고 당첨금은 639회(2015년 2월) 40억6100여만원이었고, 최소 당첨금은 381회(2010년 3월) 5억6500만원이다. 올해는 1월 683회차(10억1000여만원)와 2월 689회차(23억2000여만원)에서 외국인 거주자가 ‘잭팟’을 터뜨렸다. 2002년 12월 첫 발매 이후 최초의 외국인 1등 당첨자는 22회차(2003년 4월)에 나와 45억5200여만원을 수령했다. 2005년에는 충북에서 불법 체류자로 지내던 태국인이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당당하게’ 벌금을 낸 뒤 금의환향 길에 올랐다.
여행이나 단기방문 등의 이유로 방한한 비거주 외국인은 로또에 당첨되면, 조세협약이 체결된 국가일 경우 세금을 안 내도 된다. 내국인이나 국내 거주 외국인은 5만원 이상 당첨되면 최고 3억원까지 당첨금의 22%(소득세 20%+주민세 2%), 3억원 초과부터 33%의 세금(소득세 30%+주민세 3%)이 매겨진다.
지난 8년간 비거주 외국인이 1, 2등을 차지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관광객 증가와 함께 외국인 비거주자의 복권 구입도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명동에 있는 한 복권판매점 주인 B씨는 “예전보다 로또를 사가는 외국인이 확실히 늘었다”며 “관광객을 상대로 복권 판촉을 전개하면 새로운 관광 상품이 되거나 복권기금 조성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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