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카’로 불리는 유물이 있다. 직물에 화려한 그림을 그린 불화(佛畵)로 ‘티베트 문화의 정수’라 불린다. 탕카만 제대로 보고 이해해도 티베트를 훨씬 깊게 만날 수 있다. 화정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탕카 소장처다. 박물관은 최근 ‘화정의 사치향락’ 전시회를 열어 대표작으로 꼽히는 탕카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멀어서 체험하기 힘들고, 달라이 라마의 인자한 얼굴 정도로 기억되는 티베트를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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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승려로 티베트 불교의 대표경전 ‘사자의 서’ 저자로 알려진 파드마삼바바. 그의 신통력과 관련된 여러 개의 설화가 지금도 전한다. 화정박물관 제공 |
죽음의 신인 야마가 티베트 지방을 휩쓸었다.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은 문수보살에게 도움을 청했다. 간절한 기도에 응한 문수보살은 강력하고 용맹스러운 ‘바즈라바이라바’의 모습으로 나타나 야마를 굴복시키고 지옥을 관장하는 ‘다르마 팔라’(수호신)로 편입시켰다.
티베트 전설의 하나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창설자인 총카파는 이 전설에서 죽음의 신 야마를 굴복시킨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티베트하면 떠올리는 달라이 라마가 겔룩파의 지도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 지도자다.
이처럼 종교 권력이 정치 권력까지 거머쥔 불교정권의 수립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 호족 출신인 사캬 판디타는 중국 원나라에서 포교에 성공하고 그의 조카가 쿠빌라이 칸의 왕사(王師)로 임명되면서 티베트 지배권까지 보장 받아 최초의 불교정권이 성립했다. 원나라와의 연합은 티베트불교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높여가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물관 조희영 학예실장은 “거부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원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고려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려후기의 불상에 화려한 장식 등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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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신 ‘야마’를 물리친 ‘바즈라바이라바’의 모습을 묘사한 탕카. 티베트에서 바즈라바이라바는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화정박물관 제공 |
티베트는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는 불교의 발원지 인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티베트불교에 인도 출신 승려의 그늘이 짙은 것도 그래서다. 티베트불교의 대표 경전인 ‘티베트 사자의 서’ 저자로 알려진 파드마삼바바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티베트에는 그의 신통력과 관련된 여러 개의 설화가 전하며 ‘구루 림포체’로 불리며 지금도 숭배를 받는다.
파드마삼바바의 일대기를 표현한 9점의 그림으로 이뤄진 탕카 세트는 박물관의 대표작이다. 연꽃에서의 출생, 인도의 왕에게 입양되어 왕자처럼 살았던 시절, 출가·수행의 과정 등을 압축해 보여주는 그림이다.
파드마삼바바의 일대기는 보통 9점의 그림이 한 세트처럼 제작돼 표현됐지만, 대부분이 흩어진 채 전하고 있어 9점 모두를 갖고 있는 곳은 박물관이 유일하다. 조 실장은 “파드마삼바바의 대표적인 도상을 가운데 두고 좌우 4점씩 그의 일생을 표현한다”고 소개했다.
◆아시아 각국 대표 소장품도 선보여
박물관은 1만3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 미술품이 3000여점, 중국 미술품이 4000여점이고 티베트불교 유물이 3000여점에 달한다. 이 외에도 일본,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대표 유물을 엄선해 선보이는 자리다.
‘우죽’은 조선 중기 최고의 묵죽화가로 꼽히는 이정의 작품이다. 비에 젖으면 서로 조밀하게 겹쳐지는 댓잎의 특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농담의 차이를 주어 전경과 후경에 배치함으로써 반복과 변화를 꾀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채용봉문은개병’(五彩龍鳳文銀蓋甁)은 18세기 청나라에서 만들어졌다. 은으로 된 뚜껑에 위쪽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용과 양 날개와 꼬리를 활짝 펼치고 날아오르는 봉황을 그려 넣었다. 일본 에도시대 테이사이 호쿠바가 그린 ‘미인도’도 만날 수 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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