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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깍두기 통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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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0 21:23:37 수정 : 2016-04-20 21: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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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숨바꼭질 놀이에서 균형추 역할 하는 ‘깍두기’
꽉 막힌 남북 관계에 응용
통일 깍두기 1만명 양성하면 통일은 저절로 오지 않을까
깍두기. 무로 만든 김치를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홍저(紅菹)라 한다. 깍두기를 소재로 통일 관련 칼럼을 쓴다니 다들 의아해한다. 깍두기는 조직폭력배의 은어인데, 조폭을 동원해 통일을 하겠다는 말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모든 반론은 일리가 있기에 겸허히 수용한다. 먼저 궁금한 거 하나. 왜 조폭이 깍두기인가? 몸집이 대체로 건장한 데다가 얼굴도 커 머리를 짧게 자르면 외모가 마치 깍두기처럼 보여 그렇게 불린다. 주로 조직의 말단들이다. 이들은 통일과 관련 없다.

깍두기는 국어사전에 다른 뜻풀이로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나온다. ‘오갈 데 없는 깍두기 신세구려’처럼 쓰인다. 무를 썰다 보면 끄트머리가 각진 네모로 썰어지지 않고 어중간한 모양으로 썰리는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놀이나 모임에 제대로 속하지 않은 채 덤 취급 당하는 사람을 깍두기로 부른다. 그리 좋은 처지는 아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깍두기 통일론’이라니….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널뛰기를 해본 사람은 깍두기의 효용을 알 것이다. 널뛰기는 맞상대의 체중이 엇비슷해야 한다. 체중 차이가 클 땐 어린아이를 널의 가운데에 깍두기로 앉힌다. 어느 편도 아니지만 슬쩍 가벼운 쪽에 힘을 실어 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깍두기 하기에 따라 널뛰기가 오래 지속되기도 하고, 단박에 균형이 깨져 시시해지기도 한다. 시소놀이도 마찬가지. 보통 엄마 아빠가 시소를 탈 땐 자녀가 깍두기로 균형추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의 놀이를 세 사람 혹은 네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숨바꼭질 놀이에선 깍두기의 효용이 더욱 커진다. 짝이 맞지 않아 깍두기가 된 아이는 놀이 규칙은 따르지만 벌칙은 안 받는다. 술래를 피해서 숨긴 하지만 잡혀도 술래가 되지 않는다. 승패를 결정하는 규칙에서 열외인 셈이다. 어린이, 장애인 등 약자에 대한 배려이자 아름다운 협업이다. 고스톱에서 광 파는 사람도 깍두기로 볼 수 있다. 일행 모두가 게임에 참여해 함께 즐기는 방식이다. 뒤에서 구경만 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바둑·장기판의 훈수꾼과는 다르다.

이처럼 균형 놀이에서 빛나는 존재인 깍두기를 남북 관계에 적용하면 어떨까. 북한의 핵 개발 강행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국면에서 우리로서는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태가 아닌가. 체중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두 어른의 분단 놀이 중간에 깍두기를 앉히자는 얘기다. 즉 경제력과 군사력, 사상, 체제가 달라도 너무 달라 도저히 같이 놀기 힘든 남북 중간에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 동시에 이쪽이기도 하고 저쪽이기도 한’ 통일 깍두기를 두자는 제안이다. 남북 양쪽에서 인정받는 통일 깍두기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다니며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일명 ‘통일 깍두기’ ‘깍두기 통일꾼’이다.

통일 깍두기 후보로는 누가 좋을까? 가장 편하게 남북을 오갈 수 있는 통일 깍두기로는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동포가 최우선 순위다. 남북을 두루 잘 알고 양쪽에서 거부감이 없는 이들이야말로 통일 깍두기로서 제격이다. 북한 국적의 중국 영주권자인 조교(朝僑)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허용하면 언제든 국내 입국이 가능하다. 체제에 대한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한때 고국방문단을 구성해 활발하게 남한 나들이를 하던 조총련과 재일동포, 그리고 재미교포도 징검다리로서 훌륭한 깍두기 통일꾼이 될 수 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북의 차이를 덜고 공통점을 늘려나가는 데 일조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 남으로 내려온 원조 탈북자인 실향민과 3만명에 근접한 북한이탈주민도 잠정적인 깍두기 통일꾼들이다. 당장은 북쪽의 거부감이 있겠지만 이들의 대북 송금과 고향 투자가 양성화, 활성화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깍두기 통일꾼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북한 국가대표를 거쳐 남한 프로축구팀에서 활약하는 정대세 선수와 북에서 ‘통일의 꽃’으로 불리는 임수경 의원, 그리고 북에도 팬층이 두터운 황석영 작가도 깍두기 통일꾼으로서 손색 없다. 처음엔 한두 명으로 시작하겠지만 남북에서 각각 공인된 깍두기 통일꾼들이 천 명, 만 명으로 늘어나면 통일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남북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개성공단이 폐쇄됐다고 아무 일도 안 한다면 통일은 점점 멀어만 갈 것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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