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는 유승민·김부겸 등이 전면에 나서야" 전주을 선거구의 새누리당 정운천(62) 당선인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에 '새누리당 깃발'을 꽂았다.
1996년 당시 신한국당 강현욱 의원이 군산에서 당선된 이후 여당 후보로서는 꼭 20년 만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을 지낸 그는 2010년 전북도지사 선거와 19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6년간 절치부심한 끝에 이번 총선에서 111표의 근소한 차이로 극적으로 당선됐다.
정 당선인은 "대한민국은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진단하고서 "비정상적인 정치·경제를 정상으로 바로잡는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려 (내가) 당선됐다는 평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구도나 분석이 맞았다면 상황이 똑같은 도내 다른 선거구의 새누리당 후보도 당선됐어야 한다. 또 새누리당의 정당 지지도도 같이 올라갔어야 했는데 19대 때보다 떨어졌다. 서울에서는 어땠나. 야당이 분열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은 오히려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6년간 전주시민만 보고 오직 한 길만 달려온 것이 당선된 비결이다.
-- 김무성 대표의 '배알' 발언이 있었는데
▲ 초박빙 상황에서 정말 큰 일이라 생각했다. 선거 일주일을 남기고 '전북사람은 배알도 없다'는 김 대표의 말이 빠르게 퍼지면서 여기저기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일부 시민으로부터 "정운천 찍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 돌렸는데 (배알 발언 이후) 자존심이 깎여 이제 1번 찍지 말라고 했다"는 항의성 푸념을 피할 수 없었다.
곧바로 김 대표에게 "아무리 옳은 말을 했어도 받아들이는 정서가 그게 아니면 아니다. 이대로 그냥 두면 안 되니 전주에 다시 내려와서 급한 불은 꺼야 하지 않느냐"라고 요청했다. 나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처음에는 미적거리던 김 대표에게 초박빙의 판세를 재차 설명하고 재촉하자 선거 하루 전날 도민에게 사죄하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 111표 차이의 신승이었는데
▲ 그동안의 여론조사와 비슷한 차이로 개표 초반까지 2천표 가량 줄곧 앞서서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정 넘어서면서 득표율이 계속 떨어졌다. 낌새가 이상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부재자 표가 개표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뒤집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스쳤다. 개표 현장에 달려가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실시간으로 보면 가슴이 뛸 것 같아 가지 않았다.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사무실에서 숨죽이며, 피를 말리며 개표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 구체적인 당선 비결은
▲ 시민은 "오만한 새누리당이 정말 싫다"고 했다. 그러나 "두 번의 낙선에도 6년간 전주를 떠나지 않은 정운천은 괜찮다"라고 했다. 이 기간 3만 명에 가까운 시민과 셀카를 찍고 돌아다닐 정도로 스킨십을 강화했다. 또 국회의원 배지 없이도 익산 왕궁단지, 새만금사업,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이전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진정성을 인정받은 거 같다. 정서적으로 껴안았다. 그랬더니 "새누리당은 괜히 싫은데, 정운천은 왠지 좋다"로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당과 인물을 분리해서 투표한 시민의 현명한 선택 덕분이다.
--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는
▲ 새누리당의 오만함과 거만함, 잘못된 공천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다. 또 박근혜 정부가 정치개혁 등을 하려면 표를 많이 얻었어야 했다. 그런데 국민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으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타협하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정치권이) 기득권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역시 한 발짝도 못 나간다. 국민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한 것이다. 이제 누가 일방적으로 갈 수 없다. 과거의 패권주의나 일당 독주로는 안 된다. 독재적 잔재를 가진 사람이 끌고 가지 못하도록 국민이 이미 심판을 내렸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요구받고 있다. 유승민이나 김부겸 당선인처럼 국민만 바라보는 사람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말 타협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 정 당선인이 설립한 기업의 근로자들 임금이 열악하다는데
▲ 지금은 최저 임금제를 어기면 제재를 받는다. 익산에 참다래유통사업단을 설립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어떤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 이 사업단을 바탕으로 장관까지 했고, 그 당시 청문회도 했지만 단 한 건도 걸리지 않았다. 이 사업체는 정운천의 개인회사 아니라 농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다. 지금까지 배당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 일반 농협보다 수십 배 많은 수치다. 주주인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사업단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물류 유통의 관점에서만 보면 애초 해남에서 천안이나 논산으로 옮겼어야 했다. 하지만 고교를 다녔던 익산에 터를 잡았다. 많은 기업인이 자신의 기업을 홍보하지만, 여태껏 한 번도 참다래 사업단을 앞세운 적이 없다. 일종의 정경분리를 한 한 셈이다.
-- 혹시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장관 시절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괜찮다고 했는데
▲ 한우든 미국산이든 고기를 잘 안 먹는다. 당시 소고기 협상을 놓고 오해하거나 덧씌워진 것이 있다.
광우병 위험도는 그때나 20년가량 흐른 지금이나 비슷하다. 그런데 지금 광우병 걸린 사람이 있느냐. 전 세계적으로 한 명도 없다. 당시 일부 언론은 몇 가지를 왜곡하고 과장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0%가 넘는다고 했지 않느냐.
또 '다우너 소(주저앉은 소)'가 실제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음에도 국민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으로 인식됐다.
일종의 '광우병 공포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른은 물론 중·고생 중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있느냐.
광우병은 동물성 사료, 즉 육골분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발생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동물성 사료를 먹이니 소가 미친 거다. 그래서 그 원인을 제거했더니 해결됐다. 이제는 차분히 진실과 사실을 따져볼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 선거 유세 때 가족의 도움이 남달랐는데
▲ 온 가족이 한데 모인 것은 개표할 때가 처음이었다. 선거 기간에는 따로따로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 운동을 하는 지역이나 대상, 시간이 서로 달라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내는 나를 위해 젊은 나이에 천직인 교사를 그만뒀다. 그렇게 험난했던 촛불 정국 때도 꿋꿋하게 교편을 잡았었다. 그런 아내가 십수 년을 더 다닐 수 있는 학교를 40대 후반에 그만두고 나를 도왔다. 명예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들과 딸도 직장과 대학을 잠시 쉬고 전주 곳곳을 찾아다녔다. 각자 역할을 나눠 아내는 뒷골목, 아들은 앞 골목, 딸은 유세현장에 있었다. 더민주나 국민의당 후보들이 시의원이나 도의원을 대거 동원해 선거운동을 한 것과 비교됐다. 새누리당의 지방의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가족은 눈물겹도록 고맙고 큰 힘이었다.
--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이 망가진다. 비정상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주력하겠다. 구체적으로는 지역균형발전과 지역주의 타파다. 영남의 국가 예산이 호남의 몇 배인지 따져보라. 또 호남에서는 야당이, 영남에서는 여당이 싹쓸이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런 것들이 비정상이다.
호남도 영남처럼 잘 살아야 한다. 또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후보가, 영남에서도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 아울러 전북의 발전을 위해서 여·야 구분 도내 모든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겠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이들 당선인이 모인 자리에서 "전북 발전당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정동영 당선인은 '전북 애향당'을 만들자고 하더라. 이처럼 여야 구분 없이 전북을 사랑하고, 전북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태겠다.
현실 정치와 국민이 원하는 정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 순진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권력 같은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면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될 것으로 믿는다.
세상을 살면서 뭔가 가지려고 하면 썩은 냄새가 나고, 누군가를 배려하면 향기가 나는 법이다.
정치를 하는 한, 향기나는 정치를 하고 싶다.
<연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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