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문가 엉터리 수치가 혼란 불러

본래 확률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꾼들에게나 유용했던 것이다. 도박이 신의 섭리가 아니라 확률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처음 인식했던 사람은 로마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였다. 확률을 뜻하는 ‘프로발리스’라는 말도 키케로가 처음 사용했던 것이다. 확률을 수학 이론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밀라노의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였다. 실제 게임의 결과를 훨씬 더 작은 규모의 ‘표본’에서 얻은 확률로 짐작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많은 수의 구성원으로 이뤄진 집단에서 발견되는 통계적 특성도 확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신체적 특징이나 수명은 합리적인 분석이나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도시나 국가와 같은 대규모 집단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큰 수의 법칙’으로 정의되는 통계적 ‘평균’과 ‘분포’가 상당한 매력을 갖게 된다. 17세기 영국의 윌리엄 페티가 제시했던 ‘정치산술’에 의해 시작된 통계적 분석이 이제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회과학적 분석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통계와 확률이 자연과학까지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였다. 티끌보다 더 작은 원자와 분자로 이뤄진 물질의 세계에서도 통계적 특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이었다.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 된 양자역학도 근원적으로 통계적 해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에 대한 통계적 해석을 누구나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양자역학의 정립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도 ‘신(神)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았다’는 고집을 버리지 못했다. 통계와 확률은 정보가 부족한 경우에 사용하는 임시방편일 뿐이고, 세상의 근원을 설명해 주는 엄밀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양자 얽힘 현상은 아인슈타인의 기대와 달리 세상이 통계적으로 만들어졌고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쏟아내고 있는 어설픈 통계와 확률이다. 통계법칙이 적용될 정도로 충분히 크지 않은 표본에서 만들어낸 엉터리 통계와 처음부터 애매하게 정의된 엉터리 확률이 우리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민주주의가 휘청거리고, 경제가 무너지고, 개인의 건강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현대사회에서 확률과 통계를 완전히 외면해 버릴 수도 없다. 어설픈 통계와 확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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