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취업준비생 김모(28)씨는 요즘 취업 걱정 때문인지 평소와 달리 자주 우울한 기분이 든다. 일시적인 증상이라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최근 밤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까지 생겨 정신과(클리닉) 상담을 예약했다. 김씨는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지 몰라 염려된다"면서도 "수면제 등을 복용해 봤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어 결국 정신과를 들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 자영업자 박모(55)씨는 약 4개월 전부터 의욕이 없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같은 증세는 갈수록 심해져 결국 이달 초 사무실 근처 정신과를 찾았다. 박씨는 "정신과에 가는 것 자체가 꺼려졌던 게 사실이지만, 막상 의사와 상담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한국인 4명중 1명이 평생 한번 이상은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었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높은 자살률로 연결되는 만큼 정부가 범부처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최근 '정신건강 종합대책(2016~2020년)'을 확정했다.
◆"정신과 진료, 지인들 눈치 보여요"
이번 종합대책에 따르면 내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병·의원이 아닌 동네 내과나 가정의학과 등 1차 의료기관에서도 우울이나 불안 등 정신과적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동네의원에 관련 교육을 하는 한편, 우울증 등에 대한 선별적인 검사도구를 개발해 보급하고 진료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같은 조기발견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한 것은 우울증 등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이에 대한 자각증세 없이 신체적 증상으로 동네 의원을 방문한 경우 정신건강 문제를 놓치지 않고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자살 사망자 121명의 심리부검 결과를 보면, 자살자의 28.1%는 자살 전 복통 등 신체적 불편함이나 수면곤란으로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동네 의원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발견될 경우 정신과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우울증 약물 처방이나 정신 상담 치료 등 더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삶의 고비에서 얻게 된 '마음의 병' 조기에 발견·치료
이를 위해 정신건강증진센터에는 정신과 의사를 '마음 건강 주치의'로 단계적으로 배치한다. 종합대책은 내년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치료 시 본인부담금을 낮추고, 상담료 수가를 현실화하도록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개편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부는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적 제도를 개선하고 인식개선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인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도 벌이기로 했다.
만성 정신질환자도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강제 입원 절차를 엄격히 하기 위해 5개 국립정신병원에 '입원적합성 심의위원회'를 설치한다.
이번 종합대책을 통해 정부는 2020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명당 20명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신건강 문제 발견 후 치료까지 걸리는 기간을 2011년 기준 84주에서 50주로 단축, 중증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시설 정원을 지금보다 10% 늘릴 계획이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 함부로 못시킨다…절차 강화
종합대책 수립은 우울이나 중독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자살 등의 사회적 비용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4.7%는 △불안 △기분 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 △정신병적 장애 등 정신질환을 평생 한 번 이상 앓은 적이 있었다.

정신질환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27.3명이나 된다.
복지부는 "삶의 고비에서 마음의 병을 얻게 될 경우 조기에 이를 발견하고 신속하게 회복,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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