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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산책] 미학적 공간 ‘밤’… 민중미술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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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08 20:44:01 수정 : 2016-03-08 2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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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에 대한 미학적 접근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에서 한국 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혜종씨가 포문을 열었다. 유씨는 오는 4월6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민중미술작가 주재환 전의 평론에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민중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논의는 작품의 사회 비판적 주제와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 이루어졌다. 한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와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이러한 맥락 속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유씨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미학적으로 민중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바라보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민중미술 전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평가 역시 모색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 민중미술은 사회적 맥락과 정치적 운동의 연관 속에서 매우 제한적으로만 평가되어 왔다. 민중미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미학적, 정서적 표현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유씨는 주재환 작가의 공통적인 작품배경과 사건에 주목한다. 바로 ‘밤’과 ‘변신’이다. 주재환에게 ‘밤’은 단순히 일몰부터 일출까지의 물리적 시간이 아니다. 그에게 ‘밤’은 사회 질서와 규율 밖에 존재하는 예술의 존재 방식이 드러나는 미학적 공간이다. 이성, 질서, 규율의 의미를 상징하는 ‘낮’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생성과 변모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주적 공간이다. 자연을 포함한 많은 것들은 어둠 속에서 자라고, 확장하고, 변신한다.

주재환은 일상의 사물과 현상을 미학적, 우주적 공간인 밤의 세계에 옮겨와 ‘변신’시킨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파괴하고, 일상에서 익숙한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예술이 규범과 제도가 강제하는 제한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표현과 소통 방식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재환의 1998년 작품 ‘짜장면 배달’(사진)은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배달원의 모습이 삶의 고됨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배달원은 그러한 삶의 무게에 눌려 좌절하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무게를 경쾌하게 치고 나가는 유희하는 자의 모습이다. 현실의 질서를 파괴하는 위협적인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밤의 공간에서 모든 것이 자유로이 변신을 한다고 하겠다.

분명 민중미술 새로 읽기는 한국미술의 상상력과 재료들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유씨는 오랜시간 작가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와 평론가가 같이 성장하는 시대다. 일방적 평론시대는 끝났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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