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동지 요제프 보이스(1921~1986)와 존 케이지(1912~1992)와의 공감대에서 나온 예술행위로 볼 수 있다. 보이스는 “미술은 낡은 사회 구조의 억압적인 면을 제거할 수 있는 진화적이고 혁신적인 유일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케이지는 ‘우연성의 음악’을 주창한 미국의 전위 작곡가였다.
바이올린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김창열 화백. 그는 “1960년대 중반 은사였던 김환기 화백이 뉴욕 집으로 불러 알고 지내라며 백남준씨를 처음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백남준은 이 자리에 함께 작업하던 전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 동행했다. |
백남준은 예술은 즐겁게 해주는 고등 사기라고 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나쁜 의미의 사기는 에고의 예술이었다. “예술은 잘하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진지한 표정을 내세워 독자들을 눈속임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한 사기라는 말은 에고의 예술을 일컫는다. 나는 지금도 폼 잡는 예술은 하고 싶지 않다.”
백남준이 예술적 동지의 한 사람인 음악가 존 케이지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TV 조각 ‘존 케이지’(1990년). 갤러리현대 제공 |
“TV 화면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정교하며, 파블로 피카소처럼 자유롭고, 오귀스트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고, 피터르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고, 잭슨 폴록처럼 격정적이고,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인 캔버스로 만들고 싶다.”
전시에는 1960년대부터 2000년 이후 작품까지 출품된다. 백남준 사후 국내에서 열리는 최대 규모 전시라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개막식엔 홍라영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 박만우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과 박서보·정상화·이우환·윤명로 화백 등 백남준이 생전 교류했던 문화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문화재단 주관으로 ‘백남준 비디오 조각 보존과 뉴미디어아트의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백남준 작업을 도와주었던 테크니스트 3인이 발제를 했다. 미국 신시내티 스튜디오 시절을 함께 했던 마크 파스팔은 “한 명의 예술가가 공방에서 혼자 작업하면서 이토록 많은 수의 다양한 규모의 작품을 남길 수는 없는 법”이라며 “남준의 천재성이 빛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남준은 공동 작업에 탁월했다. 비전을 현실로 실현해 줄 사람들을 가까이 두었던 것이다. 주변 이들에 대한 그의 신의와 우정이 그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재능이었다”고 회고했다. 백남준은 협업자에게 일일이 간섭하는 대신 ‘재미있게만 해(Make it interesting!)’라는 주문만 했다. 백남준의 ‘재미의 예술’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02)2287-350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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