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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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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28 21:16:21 수정 : 2016-01-28 21: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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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주상복합 단지로 1968년에 건립된 세운상가가 대변신을 시도한다. 세운상가는 워커힐과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서초동 법원청사를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씨 작품이다.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1㎞ 달하는 널찍한 도로에 건물 8개동(현재 7개동)이 들어섰다.

원래 이 지역은 일제 때 폭격으로 인한 화재가 도시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을 허물고 폭 50m 정도로 비워둔 소개공지였다.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흉한 모습의 빈터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피란 여성들이 먹고살기 위해 몰리면서 ‘종삼’으로 불리는 윤락가가 형성됐다. 첫 주인인 셈이다. 최일남의 단편소설 ‘서울의 초상’ 무대이기도 하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집창촌을 몰아내기 위해 ‘나비작전’을 펼쳤다. ‘꽃’을 찾아드는 바람난 ‘나비’를 쫓기 위해 한국전력 직원들을 동원해 골목마다 100V짜리 가로등을 달아 밤거리를 밝혔다. 서울시는 도시재정비사업을 하면서 무허가 건물을 헐고 도로를 건설하려다가 주거자들의 항의에 부딪히자 도로와 아파트를 동시에 건설하는 묘안을 실행했다. 건물을 연결하는 보행자 전용데크를 3층에 설치한 것이다.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말을 줄인 ‘세운’상가아파트에는 연예인, 대학교수, 고위공직자 등 소위 힘 있는 사람들의 선호도 1위 주거지였다. 상가 개점 직후 공산품 판매가가 높아 폭리를 취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내 유일의 전자제품 종합상가 명성을 누렸다. 1980년대 학생들 사이에 세운상가에서 미사일과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TG삼보컴퓨터와 한글과컴퓨터도 여기서 시작했다. 외국 음란서적과 금지곡 음반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이후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전자산업의 메카라는 명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87년 용산전자 상가가 생기면서 가전제품 상가 1위 자리를 빼앗겼다. 이후 중국산 저가제품이 몰려들면서 가격경쟁력마저 잃었다. 슬럼이 되자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5년까지 모두 헐고 숲길을 조성키로 했다. 당시 현대상가건물이 철거됐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나머지 건물들을 리모델링 보전키로 했다.

세운상가에는 요즘 젊은 창작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저렴한 임대료 덕이다. 지난해에는 공연과 전시전 등 문화행사가 열렸다. 서울시는 이곳에 스타트업 공간을 마련하고 공연광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어제 발표했다. 2019년 다시 태어나게 될 세운상가의 주인은 누가 될지 궁금하다.

한용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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