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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冊읽기세상읽기] 플랜 Z 시대의 사막과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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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11 22:01:55 수정 : 2016-01-11 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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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기관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물이 떨어진 작가는 어린왕자와 함께 사막에서 물을 찾는다. 어린왕자가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고운 모래들이 천태만상을 형성하는 사막은 어쩌면 모래와 바람과 하늘의 오케스트라일 터인데, 어린왕자는 그 심연에서 대뜸 우물을 지목한다. 읽고 또 읽어도 놀라운 대목이다. 보이는 사막에서 보이지 않는 우물을 바라보는 영혼의 눈 덕분이었을까. 그들은 마침내 우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우물은 사하라사막에 있는 샘 같지 않다. 사하라사막의 샘은 고작 모래 속에 뚫린 구멍일 뿐인데, 그들이 발견한 샘은 마을에 있는 우물 같았다. 도르래도, 물통도, 끈도 다 준비돼 있다. 어린왕자가 도르래를 돌리려 하자 오랜 침묵을 깨고 삐걱거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어린왕자는 환호한다. “우리가 이 우물을 깨우니까 노래하는 거야.” 도르래의 노래를 들으며 둘이 물을 마신다. 그 물은 결코 단순한 물일 수 없다. 특별한 천상의 선물에 가까운 어떤 것으로 축제처럼 달콤하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마크 오스본의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를 보면서 자연스레 생텍쥐페리의 원작에 이끌리게 된다. 애니메이션에서 소녀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타이거맘’이다. 경쟁력과 성취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 아래 엄격하게 교육하려는 타이거맘과는 달리 옆집 할아버지는 아이의 꿈과 자율을 중시하는 ‘스칸디대디’를 닮았다. 소녀는 스칸디대디와 교감하면서 어린왕자의 세계로 진입하며 성장의 눈을 뜬다.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제대로 헤아리는 마음의 눈을 가다듬는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말한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심연에서 인간과 삶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어 있기 때문이다. 덧셈의 욕망에 길들여진 사람의 세상에서는 사막 속에 숨어 있는 우물을 헤아리기 어렵다. 보이는 사막이 현실이라면 보이지 않는 우물은 환상이거나 상상의 영역이다. 생텍쥐페리는 그 둘을 이어보고자 비행했다. 우물의 노래를 들으며 천상의 선물을 만끽할 수 있었던 대목에서도, 작가는 “별 밑에서의 행진, 도르래의 노래, 내 팔의 노력에서 생겨난 것”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환상은 현실을 서로 넘나들면서 역동적으로 스미고 짜인다.

새해가 밝았지만 정작 우리네 살림살이는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헬조선에서 비하공화국 담론까지 구름만 잔뜩 끼어 있는 형국이다. 새해를 강타한 중국의 증시 폭락이나 북한의 수소탄 개발 선언 같은 충격적 사건에다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 고용 불안정 등 어느 곳을 둘러보더라도 사막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플랜 A나 플랜 B가 아니라, 최후의 보루까지 고려해야 하는 비장의 생존전략을 의미하는 ‘플랜 Z’란 용어까지 회자된다. 이 막막한 사막에서도 과연 어린왕자는 우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플랜 Z를 위해서라도 보이지 않는 우물의 노래를 위한 내 팔의 노력이 더욱 긴요할지도 모르겠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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