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검사와 인사

관련이슈 기자가 만난 세상

입력 : 2016-01-03 20:08:05 수정 : 2016-01-03 20:08:05

인쇄 메일 url 공유 - +

#1.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에 근무한 A씨한테 들은 얘기다. 정식 인사 발표 전에 서울중앙지검 새 부장검사 명단이 A씨 손에 들어왔다. 찬찬히 살펴보는 그의 눈길이 B검사 이름에 멈췄다. 예전에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지인이 “검찰에서 B검사한테 조사를 받으며 수모를 당했다”고 성토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A씨는 곧 민정수석실 관계자와 만나 “딴사람은 몰라도 B검사만은 절대 중앙지검 부장이 돼선 안 된다”고 항의했다. 며칠 뒤 인사가 발표됐고 B검사 이름은 중앙지검 부장 명단에서 빠졌다. A씨는 “그때 수도권 다른 검찰청 부장으로 전보된 B검사는 실망했는지 얼마 후 검찰을 떠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검사 인사, 정말 고려할 변수가 너무나 많은 ‘고차방정식’이다.

김태훈 사회부 기자
#2. 서영제 전 대구고검장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서울남부지청 검사로 재직하던 1986년 느닷없이 순천지청으로 발령 난 비화를 털어놨다. 법무부 고위층이 선처를 당부한 정권 실세 측근을 구속한 것이 화근이었다. 성질 급한 이 같으면 사표를 썼겠지만 서 전 고검장은 자녀까지 순천시내 학교로 전학시키며 ‘오기’로 맞섰다. 이후 그는 ‘검사장의 꽃’ 서울지검장을 거쳐 고검장에 올랐다.

2001년 별세한 김경회 전 부산고검장도 1972년 서울남부지청에서 장흥지청으로 좌천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서기관급 공무원 1명을 구속하려다 이를 말리는 상사와 충돌한 게 발단이 됐다. 양복 안주머니에 사표를 품고 남도 땅끝으로 내려간 김 전 고검장은 지청장의 간곡한 만류에 마음을 돌렸다. 그 또한 훗날 대검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을 거쳐 고검장을 지냈다.

#3. 검찰 인사를 지켜보면 종종 ‘새옹지마’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검사 시절 안팎의 예상과 달리 고검장 진급에 실패했다. 검사장을 끝으로 아쉽게 검찰을 떠난 그가 고검장보다 훨씬 높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더니, 급기야 검찰 출신 첫 헌재소장의 영예까지 안았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검사장 승진에서 두 차례 연거푸 탈락했다. 3번째 도전에서 ‘늦깎이’로 검사장을 단 그는 선배와 동기들을 제치고 법무장관에 기용된 지 2년여 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로 영전했다. 검찰총장을 지낸 한 원로 법조인은 “그런 시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박한철·황교안이 과연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4. 요즘 검찰은 인사철이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인사는 끝나 지청장, 차장, 부장 등 중간간부와 평검사 인사만 남았다. 다음 자리에 관한 ‘귀띔’을 들은 검사도 있을 테고 어디로 갈지 막막한 검사도 있을 터이다.

인사에 목숨을 거는 검사들의 속성상 ‘물먹었다’ 싶으면 당장 사직서가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다. 하지만 속담에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진정한 검객(劍客)은 조직이나 상사가 ‘나’의 진가를 알아볼 때까지 칼날을 갈며 기다리는 법이다.

김태훈 사회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
  • 이나영 ‘수줍은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