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된 유니폼 넘버 9번의 주인공,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
1941년 타율 0.406을 기록한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마지막 4번타자로 유명하다.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선수생활 절정기에 두 번씩이나 조국을 위해 참전, 세계평화를 지킨 점이다. 무려 5시즌을 해군 조종사로 전장을 누비면서도 타격 전부분에 걸쳐 지금까지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테드 윌리엄스이다.
◇마지막 4할타자이자 조국을 위해 두 번 씩이나 참전한 애국자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1918년 8월 30일 ~ 2002년 7월 5일)는 메이저 리그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슈퍼스타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1941년 타율 0.406을 기록했다. 이후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더 이상 4할 타율을 기록하지 못했다.
타율 4할은 가장 넘어서기 힘든 마의 기록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테드 윌리엄스는 선수생활 절정기인 20대 중반과 30대 초반 조국을 위해 참전했다.
1943년부터 1945년동안 해군 조종사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1952년과 1953년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테드 윌리엄스는 19시즌을 뛰면서 통산 2292경기에 출전 타율 0.344, 출루율 0.482, 장타율 0.634, 521홈런, 2654안타를 기록했다.
참전만 하지 않았다면 행크 아론이 아니라 테드 윌리엄스가 베이브 루스의 홈런 기록(714개)를 넘어섰을 것이란게 일반적 평가이다.
시즌 평균 27개의 홈런을 기록했기에 공백기, 그 것도 힘과 기량이 넘쳤을 때 공백기만 없었다면 800개 가까운 홈런을 쳐냈을 선수였다.
◇ 4할 타율 지키기 위해 결장 권유도 거부, 정정당당하게 4할 타율 기록
메이저리그에서 한시즌 4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1876년 시카고 커브스 2루수 로스 바네스(0.429)부터 1941년 테드 윌리엄스(0.406)까지 모두 16명이다.
이중 타이 콥, 로저스 혼스비, 에드 델라한티가 각각 3차례, 조시 시슬러와 제시 버켓이 각각 두차례 4할 타율을 보이는 등 24번 작성됐다.
테드 윌리엄스는 1930년 빌 테리(뉴욕 자이언츠)가 0.401로 4할 타율을 작성한 11년 뒤인 1941년 대기록 보유자가 됐다.
타율 4할 6리로 역사상 16번째 고타율이자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지막 4할 타자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테드 윌리엄스가 대단한 것은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1941년 9월 26일까지 테드 윌리엄스는 타율.401을 기록 중이었다.
당시 보스턴 감독이었던 조 크로닌은 시즌 마지막 남은 2경기인 필라델피아 어슬렉틱스와의 2연전에 나서지 말 것을 권유했다.
이미 규정타석을 채웠기에 나가지 않아도 영광의 4할타자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드 윌리엄스는 "비겁자가 되기 싫다"며 출전했다.
9월 27일 4타수 1안타로 타율이 0.3995로 추락, 4할 꿈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로 타율 0.406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위대한 4할 타자였으나 그해 MVP는 56경기 연속안타를 친 조 디마지오에게 양보해야 했다.
윌리엄스는 "당연히 MVP는 디마지오가 받아야 한다"며 또한번 스포츠맨십을 발휘했다.
◇ 명예의 전당과 냉동인간
타격왕 6회, 올스타 17회, 타점왕 6회, MVP 2회 등의 기록을 남긴 테드 윌리엄스는 1960년 9월 26일 볼티모어와의 홈경기 마지막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것을 끝으로 은퇴했다.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얻은 첫해인 1966년 93.38%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받으며 당당히 명예의 전당 멤버가 됐다.
2002년 7월 5일 사망한 테드 윌리엄스는 부활을 꿈꾸는 냉동인간으로 또한번 화제를 뿌렸다.
당초 화장한 뒤 유골을 플로리다 바다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다시 작성한 유언장을 통해 "시신을 냉동 보관하라"고 했다.
그의 시신은 딸 바비 조 윌리엄스 패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코 생명 연장 재단으로 옮겨져 지금껏 냉동보관 중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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