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도에 관해 가장 자세히 전한 문헌은 ‘삼국지’ 위서(魏書) 한전(韓傳)이다.
“귀신을 믿어 국읍(國邑)에서 한 사람씩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했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여러 나라에는 별읍(別邑)이 있는데 소도라고 한다.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곳에 들어가면 돌려보내지 않아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浮屠)를 세운 것과 같지만 행해진 바의 선악은 달랐다.”
국읍이란 고대국가가 나타나기 전 성읍국가의 읍을 이르는 말이다. 별읍은 일반 읍과 다른 별종의 읍이다. 이 기록은 삼한 중 마한 항목에 나온다. 진한, 변한 부문에는 나오지 않는다. 소도는 마한에만 있었던 걸까. 마한 54국 중에는 신소도국(臣蘇塗國)이라는 곳도 있었다. 이 나라는 또 무슨 나라일까.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소도로 도망하면 용서했을까. 고조선의 팔조법금.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며,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 고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법은 엄했다. 눈을 부릅뜨고 도둑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소도는 사라졌다. 자비심이 충만했을 삼국시대에도, 고려에도 잔흔조차 찾기 힘들다.
소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2000년 뒤다. 1970, 80년대 천주교 명동성당은 소도 아닌 소도였다. 시위하던 학생은 급하면 그곳으로 달려갔다. 경찰은 성당에 발을 들이는 법이 없었다. 많은 사람은 겁에 질린 그들이 보호받기를 바랐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뛰어간 조계사. 불교 신도들이 말했다. “왜 여기 있는 거냐. 나가라.” 그젯밤 한 위원장은 도심포교 기념관 4층에서 철문을 걸어잠근 채 끌어내려는 신도들과 대치했다.
소도는 왜 사라졌을까. 이유 중 하나, 도둑을 보호하니 소도를 없애야 하지 않았겠는가. 이런 글이 외국 역사서에 실릴지 모르겠다. “한국에는 신소도가 있다. 법을 무시한 사람은 그곳에 들어가 법치를 조롱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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