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빛은 살아있고, 굳게 다문 입술에선 집념이 느껴진다.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지만 그 속은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제작 영화사집, 제공/배급 쇼박스) 우장훈 검사는 말 그대로 조승우의, 조승우에 의한, 조승우를 위한 캐릭터다.
1년 전 그때, 우민호 감독의 삼고초려가 없었다면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승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가 출연을 3번 거절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내부자들’ 개봉 직전 그를 만나 출연을 망설인 이유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그런데 조금은 의외였다. 이 남자, 꽤 순수하다.
“제가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싫었어요. 대본 보면서 ‘진짜 이런 세상이야?’ ‘이런 세상이 실제로 존재해?’ 믿을 수가 없었죠. 뭔가 모를 거부감이 있었다고 할까. 그냥 제가 보기 싫은 현실이 그 안에 있었어요.”
조승우는 뉴스를 보며 화가 날 때도 많다고 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자행되는 극악무도한 사건사고들. “뭐가 가장 보기 싫은 뉴스인가?”라고 물으니, “자신이 키우는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학대하는 얘기”라는 답이 돌아온다.(그는 반려견과 반려묘 총 3마리를 키운다)
그가 우 감독에게 OK 사인을 보낸 건 크랭크인을 불과 며칠 앞두고였다. 우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병헌의 할리우드 영화 촬영 때문에 크랭크인을 더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말 극적으로 조승우가 연락을 해왔다”며 당시의 흥분을 드러낸 바 있다.

“(내부자들) 하길 참 잘한 것 같죠? 영화는 역시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란 사실을 또 느꼈어요. 찍을 때만해도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는데, 1년간의 후반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을 보고 영화란 장르가 참 대단하구나 생각했죠. 너무 오래 무대에 있었는지 영화 선택부터 촬영까지 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긴 해요.”
너무 솔직한 나머지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늦게 참여했지만 현장에서만큼은 본인이 ‘귀염둥이’였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다. 백윤식, 이경영, 이병헌 등 선배 배우들과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뭐냐 물으니 ‘귀여운 후배로 남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한 성격’한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사실 애교가 많거든요. 그런데 그 애교가 대부분 투정으로 시작하는 게 문제지. 현장에서도 막내인 제가 ‘빨리빨리 합시다’이러면 다들 재미있어 하시니까. 병헌이 형은 연기할 때 완벽주의자예요. ‘컷’ 소리가 나면 바로 모니터로 달려가죠. 그래서 장난삼아 형이 모니터 보러 못 가게 ‘저 문 막아라!’라고 우스갯소리도 자주 했어요. 아 진짜 그 분 꼼꼼함은 아무도 못 따라갈 걸요?(웃음)”
배우 이병헌은 인터뷰에서 “동생 조승우를 얻었다”고 했을 정도로 조승우와의 첫 호흡, 인연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이에 조승우는 “너무 감사한 얘기”라며 이병헌과 작업하며 느낀 소회들을 하나 둘 풀어냈다.
“이병헌 선배님은 출연작을 종잡을 수 없는 배우예요. 흥행만 보고 가는 배우가 아니란 얘기예요. ‘놈놈놈’ ‘그해 여름’ ‘달콤한 인생’ 등 다 색깔이 달라요. 그래서 여쭤봤더니 ‘다 필요 없고 시나리오 재미있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저와 그런 면이 비슷한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하면서 ‘오죽 독했으면 25년 브라운관에 있다가 할리우드까지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란 생각을 해봤어요. 집요하고 치밀해요. 선배님이 모니터링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저도 배우는 게 많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형을 얻은 느낌? 제게 자극을 주는 배우죠.”

9년 전 영화 ‘타짜’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로 호흡을 맞춘 배우 백윤식은 이번 영화에서 적(敵)으로 다시 만나게 됐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조승우는 “백윤식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참 좋다”며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 겪어오신 선배님에게 그 시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정말 좋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신 분인데도 스타일이나 감각이 요즘 트렌드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으신 것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사실 조승우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는 배우가 아니다. 그런 멀티 플레이어에게 ‘어떤 장르가 가장 좋아?’라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하나만 꼽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오기 마련. 그런데 조승우는 달랐다.
“전 무대가 제일 좋아요. 무대는 포기할 수 없죠. 팬들도 저의 그런 모습을 좋아해요. 최근 2~3년 동안 공연을 거의 쉬지 못했어요. 10주년, 15주년 작품이 계속 이어졌으니까. 그 와중에 ‘내부자들’을 찍었던 거고요. 영화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배역에 색깔을 입혀가는 재미가 분명 있죠. 과거 ‘클래식’ 했을 때 소녀 팬들이 꽤 생겨났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 ‘하류인생’을 했더니 팬들이 우르르 빠져 나가더라고요. 스스로 ‘연기를 꽤 잘했나 보다’라고 위안했죠. 뭐. 드라마는 또 할 거예요. 찍으면서 힘들긴 하지만 시청자나 팬들 반응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의 유려한 입담과 마주하고 있자니 그동안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배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얘길 해줬더니 “많이 까칠한 줄 아셨어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까칠하다는 거. 그건 제가 퍼뜨린 이미지예요. 데뷔 초 제가 너무 순수해 보였는지 캐스팅이 잘 안 되더라고. ‘타짜’ 때도 그래서 일부러 ‘저 착해 보이지만 원래 안 그래요’라고 말하고 다녔죠. 아마 그때 인터뷰 때마다 전략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까칠한 면이 아예 없진 않아요. 그런데 누구나 그런 면이 조금씩은 있잖아요. 선의의 무언가가 피해를 받고 있다거나 할 땐 저도 불 같이 나서죠. 알고 보면 저도 심성 고~운 청년이랍니다.(웃음)”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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