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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붉은 소나무에서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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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23 20:55:50 수정 : 2015-11-23 20: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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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적송자를 흠모했던 중국인들
아름다운 베풂 뒤 물러나는 게 순리
가을의 산자락이 서서히 노랗게, 발갛게, 뻘겋게 변했다가 짙은 갈색의 옷을 입고 있다. 변하지 않을 것처럼 멀쩡하던, 공자가 ‘후조(後凋)’라고 해서 시들지 않을 대표적인 식물로 표현했던 소나무도 여름에 비해 색깔이 짙어졌다. 한여름 왕성하게 무언가를 생산해낼 때의 푸르름 대신에 이제 추위를 견딜 두꺼운 옷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의 피부를 두껍게 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가운데 멀리서 봐도 눈길을 끄는 소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다른 소나무 몸이 짙은 흑갈색으로 변하는 것과 달리 이 소나무는 몸이 빨간 것이다. 웬일인가, 초점을 맞추고 자세히 보니, 나무 몸을 빨간 담쟁이가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담쟁이들이 여름에는 그냥 초록으로 감고 있어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다가 가을이 되니 빨갛게 변하면서 마치 소나무의 몸이 빨간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테면 ‘적송(赤松)’인 것이다.

그런데 진짜 적송은 우리나라 도처에 자생하는 소나무 가운데 몸체가 벌건 소나무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원래 나무의 몸체가 누런 창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황장목(黃腸木)이라 했단다. 그런데 일본의 점령시대에 ‘적송’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일본인들이 누런 색을 붉은 빛으로 보고 붙인 이름을 따른 것이란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소나무를 ‘적송’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지만 갑자기 다른 이름을 찾아서 붙이기가 어렵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빨간 소나무’, 이렇게 이름을 붙여보니 일본화에서 보는 소나무 그림 같다. 일본 사람들이 강조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을 빨갛게 칠해놓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소나무를 빨갛게 칠해놓는 경우가 있었다. 오래 사는 것을 기원하기 위한 경우였단다. 옛 사람들은 학(鶴)이 천년을 산다고 믿었기에 화폭에 학만을 그리고 이를 천수도(千壽圖)라 했다. 마찬가지로 소나무도 오래 사는 것으로 믿었기에 소나무만을 그리는데, 이를 백령도(百齡圖)라고 했다. 이때에 소나무 등걸을 빨갛게 칠한단다. 빨갛게 소나무 등걸을 칠하는 것은 도교에 나오는 적송자(赤松子)라는 신선과 결부돼 있다. 도교에서 적송자는 우사(雨師)로서, 가뭄이 계속되면 지상에 내려와 비가 오도록 하는 좋은 신선이다. 그는 몸이 누런 털로 뒤덮여 있고 다리는 맨살이며, 봉두난발이고 머리 색깔이 붉다고 해 이런 이름을 얻었는데 오랜 가뭄 끝에 고생하는 대지에 큰 비를 내려주어 백성과 농작물 모두가 크나큰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이 신선을 기려 그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소나무만 그리고 그 몸체를 빨갛게 칠하는 것이란다. 뭐든지 기상천외한 생각을 잘 하는 중국인이 만들어낸 전설이지만 눈앞에서 담쟁이 넝쿨로 덮여 줄기가 빨갛게 된 일종의 가짜 빨간 소나무를 보니 중국의 그런 전설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중국 사람들은 신선 적송자가 인간세계에서 좋은 일만 하고 천상에 올라간 덕을 흠모하고 그를 닮고 싶어했다. 한나라를 통일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장량(張良)은 황석공(黃石公)이라는 노인을 흙다리 위에서 만나, 노인이 일부러 다리 밑으로 내던진 신발을 주워 준 인연으로 태공(太公)의 병법을 전수받고 그것으로 한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하도록 해 유후(留侯)라는 벼슬을 받았는데, 그 뒤에 “원컨대 인간사를 버리고(願棄人間事)/적송자를 따라 놀겠다(欲從赤松子遊耳)”라고 말한 후에 곡식을 끊고 신선의 길로 들어간 것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온다. 이 고사에서 적송자는 공을 이루고 몸을 물리는 대명사가 되어,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 속으로 돌아가겠다는 선비들이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이를 많이 인용했으며, 심지어 안동 봉정사 극락전의 외벽에는 장량이 황석공으로부터 병서를 받는 광경과 신선 적송자가 바둑을 두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학이 천년을 산다고는 하지만 소나무는 아직 천년을 산 것을 보지는 못했는데, 몇 년 전 태풍 때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라 할 충북 괴산 청천면의 용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져 결국 회생하지 못한 것을 보거나 20여 년 전 서울 통의동 백송이 역시 태풍에 쓰러진 것을 보면 아무래도 소나무의 수명은 천년까지는 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웃나라 일본은 워낙 산이 깊고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데가 많아서 소나무도 수백 년을 산 사례가 적지 않고 한 소나무는 둘레가 6.6m로 사람 네 명이 팔을 뻗어 겨우 닿는 거대한 크기로 수령 700년은 됐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뭐 소나무가 천년을 살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것만은 아니리라. 천년을 살든 몇 백 년을 살든 우리 인간보다는 오래 사는 셈인데, 우리도 이 생을 몇 백 년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될 때 남에게 혜택이 되는 삶을 살고 또 적절하게 물러나는 지혜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가을이 겨울로 전환되는 이 시간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생각과 성찰을 하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일진대, 자연의 순환 속에서 물러나는 삶의 의미를 배우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예정된, 그러나 엄정한 변화는 그러한 지혜를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고 그 속에서 유독 눈에 띈 가짜 빨간 소나무 또한 그런 것 같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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