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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들죠”

입력 : 2015-11-10 21:01:53 수정 : 2015-11-10 21: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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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건축물 찍는 사진작가 박찬민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우리를 만들지요.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주변 공간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도시라는 공간에서, 그것도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키드’ 박찬민(45) 사진작가는 도시의 건축공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산과 들이 있는 풍경이 고향이라면 그에겐 건물숲의 선과 면이 있는 풍경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러기에 기성세대와 감성적 유전자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게 선과 면이 중요한 이유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선들과 면들이 만나고 다시 생성되는 공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사진속 풍경은 아파트나 빌딩숲이 전부다. 아파트의 경우 창문이 지워진 모습도 있다. 선과 면의 단순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공동주택인 아파트를 찍은 ‘블록스’ 시리즈. 추가 작업을 통해 창문을 지운 모습이 이채롭다.
“도시속 우리네 삶의 풍경을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라 생각합니다.”

도시 공간에 깃든 엄격한 규격성과 현대인의 삶의 요소를 독특한 미감으로 카메라에 담은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스트루스를 연상시킨다.

“기본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같지만 과정이 다를 겁니다. 스트루스와 같은 작가들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관점을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면 제 경우는 객관적 현실로부터 시작은 하지만 조금 더 주관적 시선으로 옮겨 가는 것을 꺼리지 않아요.”

무엇보다 그에게 도시는 더 이상 특정 공간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라는 장소가 싫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도 결국 돌아오는 길에 눈앞에 들어온 도시의 풍경과 야경에 다시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드는 그런 모순적 감정이 드는 곳이 바로 도시다.

도시 건축물을 통해 현대인의 삶의 표정을 말해주고 있는 박찬민 작가. 그는 “모든 도시에서 개인은 도시 안에 어떤 공간이 구축됐는지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삶의 색깔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내게 가장 익숙하고 그래서 어쩌면 별로 고민하지 않기에 잘 모를 수도 있는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기록과 표현이 제 작업의 공통 주제입니다.”

그의 ‘공간의 포위'(Urbanscape; Surrounded by Space) 시리즈는 도시라는 공간의 보편적 성향에 주목한다. 건물의 선과 선이 만나고 면과 면이 겹치고 선과 면이 혼재되는 장면들을 도식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도시라는 공간을 건조한 시선으로 사례연구하듯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 속에 산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인공의 공간에 둘러 쌓여 있는 것이며, 과거 자연속에 살던 인간의 모습이 아닌 인간이 만든 인공에 포위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블록스(BLOCKS) 시리즈에서는 아파트 등의 공동 주거형태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한다. 서로 다른 이름과 약간은 다른 모습들로 존재하지만 더욱 단순화시켜 바라보기 위하여 유리창을 지웠다. 그렇게 단순화한 아파트들의 모습은 그저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보이며 일종의 저장시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블록스’는 아파트의 영국식 표현인 ‘타워블록’(Tower Block)에서 따왔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이 창고나 컨테이너와 같은 공간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에 의문을 제시하며 그 공간 안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차갑고 획일적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제게 사진이란 현실을 기록하는 재현의 도구라기보다 표현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현실을 연결 확장해 주기에 제게 의미가 있지요.”

사진 속엔 사람들이 없다. 건축물이 사람의 표정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가 주로 사진을 촬영한 시간은 해가 뜨기 시작하거나 지는 시간이 아니라 햇빛이 적절하게 건물을 비추는 낮 시간이었다. 건물 자체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일우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신수진 교수(연세대 인지과학연구소)는 “작가는 고도로 압축된 공간을 정서적 중립이라는 시각에서 촬영했다”며 “어느 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작가가 그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다시 중앙대 사진과에 입학하여 사진으로 전공을 바꾸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한 그는 지난해 일우사진상에서 ‘올해의 주목할 작가’ 전시부분에 선정되어 12월 23일까지 일우스페이스에서 전시를 갖는다. 일우사진상은 유망한 사진작가를 발굴해 국제적 경쟁력을 지닌 세계적인 작가로 육성하고자 2009년 제정됐다. ‘일우’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호다. 일우사진상 심사에는 국제적 명망도가 있는 현대미술 분야의 국내외 유력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1차 심사 통과자들은 심사위원과 일대일로 개별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으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제7회 일우사진상의 공모는 내년 초에 진행될 예정이다. (02)753-6502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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