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과 여인'을 주제로 한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던 천경자 화백이 지난 8월 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22일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70)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딸 혜선씨는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어머니는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며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천 화백은 지난 1991년 절필선언을 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가 1998년 11월 일시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큰딸 이혜선씨의 간호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천경자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진학했다.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일약 유명화가 대열에 접어 들었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나온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천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선언을 했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천 화백이 일체 외부와의 연락을 끊는 바람에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천화백에게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면서 생사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어머니를 예술원 회원에서 제외해 달라"고 예술원에 요청한 맏딸 이혜선씨는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서도 천화백의 모습등을 공개하지 않아 "혹시 이미 돌아가신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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