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기규제 논란을 재점화시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총기난사로 10명이 숨진 오리건주 로즈버그시를 찾았을 때 그를 맞이한 플래카드들에 적힌 문구들이다. 조용한 비공식적 방문이었지만 공항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운집했다. 환영하는 목소리만큼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이들은 “공식적인 연설도 없이 조용히 현장을 찾아 희생자의 가족을 위로하는 대통령의 마음을 안다”며 “반복적인 비극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이들은 “(총기소지 합법화를 강조하는 관할 지역 더글라스 카운티의) 존 핸린 경찰서장을 지지한다”며 “주민 대다수가 사냥을 취미로 갖고 있는 현실을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고 언론에 밝혔다.
총기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에 주민들의 시선은 이처럼 엇갈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중 8차례에 걸쳐 총기난사 현장을 위로방문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가 원하는 총기규제 법제화는 요원하다.

총기규제를 향한 노력과 부침은 노예해방 이후의 미국 역사만큼 오래됐다. 그만큼 총기소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리 사격을 즐겼던 대통령도 다수였다. 심지어 총기소지 로비단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전미총기협회(NRA) 회원이었던 역대 대통령도 8명이나 된다. 율리시스 그랜트(18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윌리엄 태프트(27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존 F 케네디(35대), 리처드 닉슨(37대), 로널드 레이건(40대), 조지 H W 부시(41대) 전 대통령이다.
전쟁영웅은 물론 진보적인 대통령까지 NRA에 가입한 것처럼 총기소지와 규제 논란은 시대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려왔다. 그럼에도 총기소지 허용이 원칙이고, 규제 목소리가 이에 도전하는 흐름이다. 총기소지는 미국 역사와 헌법의 주요 축이다. 청교도가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1620년부터 총은 필수품이었다. 원주민과 식민지 영국군을 상대할 때는 물론이고, 짐승의 위협을 받을 때도 총은 필요했다. 1791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조에 ‘무기를 소장하고 보유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무기 소지권’이 규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미국에서는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보다 총을 구하는 게 쉽다’는 말이 일상화됐다. 주별로 한계를 두지 않는 이상 총기 구입은 18세 이상 신분증만 있으면 가능하다. 당장 2년 계약에 500달러의 보증금을 요구하는 이동통신 개설과 나이가 21세 이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신분증 2개를 요구하는 애견 입양 조건에 비해서도 총기구입 요건은 까다롭지 않다.
최근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의 프랭클린 셔먼 초등학교 정문 인근에 총기판매점이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사진 스튜디오로 사용되던 곳으로, 초등학교에서도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총기판매점 개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학부모들 다수는 이전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주민은 되레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총기판매점을 방문해 총을 구입해 주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사고도 많다. 오바마 대통령이 오리건주를 찾은 9일에도 2건의 총기사건이 발생해 2명이 숨졌다. 민간단체인 ‘총기난사 추적자’(Mass Shootings Tracker)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올해 9개월 동안 미국에서 4명 이상이 숨진 총기사건은 294건에 달했다. 4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 380명이 숨지고 1000명이 다쳤다. 올해 총기사건이 없는 날은 8일에 불과했다. 1명이 자살한 경우까지 포함해 지난해 총기 사망자는 1만2562명에 달했다. 그만큼 총기사건은 일상이 되고 있다.

오리건주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미 백악관은 새로운 행정명령을 추진하고 있다. 해마다 다량의 무기를 사고파는 사람들은 면허를 갱신하고 신원조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지만,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주자들은 “총기 폭력의 실제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총기소지 자체에 제한을 가하려는 것은 교통사고가 무섭다고 차량판매를 금지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 총기규제가 발효된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때 10년 한시법으로 총기규제법안이 발효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의회 다수당이던 공화당이 연장을 거부하면서 자동소멸됐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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