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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한글날 특별기획' 그들은 왜 한글을 공부할까?

입력 : 2015-10-07 15:27:14 수정 : 2015-10-07 23: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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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일은 제569돌 한글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로 불리는 한글은 자랑스럽게 여길 우리의 유산입니다.

한글날을 앞둔 7일, 서울 연세대학교에 외국인 학생 약 2500명이 모여 ‘한글 백일장’을 치렀습니다. 한국이 좋아 온 그들에게 이날은 자기 실력을 뽐낼 기회였습니다. 그들은 왜 한국에 와서, 이렇게 한국어 실력을 겨루는 걸까요? 해외 화제의 인물을 소개해온 ‘월드줌人’ 시리즈. 한글날을 맞아 국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눈을 돌려보았습니다.


“그냥 재밌게 쓰고 싶어.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얘들아, 여기 봐봐, 사진 찍어줄게. 자 하나, 둘, 셋!”

7일 오전,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제596돌 한글날을 앞두고 열린 ‘제24회 외국인 한글백일장’에서 가방을 내려놓는 외국인 학생들의 표정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한국이 좋아 온 자신의 실력을 뽐낼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제596돌 한글날을 앞두고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메 모인 외국인 유학생들. 약 2500명의 학생들은 이날 '한글 백일장'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이날 기념관에는 약 2500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글솜씨를 겨루러 참석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건네받은 노트에 시 부문의 소재 ‘문’, 수필 부문 소재 ‘처음’을 놓고 머리를 골똘히 싸맸다.

◆ “한국 사람과 유머 코드가 통해요”

가운데쯤 앉은 록산(Barth roxane·27)은 펜을 이리저리 돌렸다. 손가락을 까딱하며 어떻게 글 쓸지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프랑스 출신인 록산은 ‘아시아권 문화’를 알고 싶은 마음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지난해 한국에 온 그는 한국문화와 자신이 잘 부합한다고 여긴다. 일본, 중국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모르겠는데, 한국인들과 대화하면 ‘유머 코드’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시아 문화를 잘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점점 재밌는 단어를 알고, 문법을 배워가면서 한국어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소속인 록산의 실력은 5급에 해당한다. 한국어학당은 유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에 따라 1~6급으로 나눈다. 숫자가 높을수록 실력이 좋다는 뜻이다.
록산은 한국인들과 대화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그는 "비슷한 단어가 많아요"라며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배울수록 한국어의 매력에 점점 빠져요"라고 웃었다.

처음에 록산은 문법에 애를 먹었다. 그는 “비슷한 단어가 너무 많아요”라며 “같은 의미를 가진 문법 표현이 여러 가지여서 말하거나 글 쓸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쑥스럽게 웃었다.

록산이 어렵다고 지목한 한국어 문법은 ‘-려고’와 ‘위해서’다. 그는 “목적격 조사인 ‘-을’이나 ‘-를’을 쓸 때 헷갈려서 고개를 갸우뚱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일어나는 ‘문법파괴 현상’을 끊임없이 봐왔다. 눈앞에 존재하는 문법을 무시하고, 편의를 위해 줄임말까지 쓰는 세태를 록산은 어떻게 생각할까?

록산은 “이해할 수 없어요”고 말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그에게 혼란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틀리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록산은 덧붙였다.

짧게나마 한국어에 대한 자기 의견을 밝힌 록산은 “백일장을 잘 치러볼게요”라고 미소 지은 뒤, 펜으로 눈을 돌렸다.

◆ “알면서도 재미로 맞춤법을 틀리는 것 같아요”

중국 산둥(山東) 성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왕주오란(Wang Zhuoran·25)은 한국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산둥 성 내에서 취직하고 싶었던 그는 한국과 왕래가 잦은 기업체가 밀집한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한국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남학생이고 K-POP(케이팝)을 좋아한다는 말에 걸그룹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왕주오란은 손을 내저었다. 그는 “한국 노래를 좋아하지만, 걸그룹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옆자리 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 노래를 좋아해요. 특히 댄스나 힙합장르요. 걸그룹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힙합그룹 에픽하이를 좋아해요.”

왕주오란의 얼굴을 보니 문득 타블로가 생각났다. 그는 “혹시 타블로랑 닮았다는 말을 들은 적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적 없어요”라고 답했다.

왕주오란은 오랫동안 영어와 일본어를 배웠지만 습득하기 어려웠다. 그대신 한국어는 배우기 쉬웠다고 했다.

그는 “이상하게 한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자신이 생겨요”라며 “아무래도 ‘관심’이 있어서 배우다 보니 열심히 하게 됐고, 실력도 점점 향상된 것 같아요”고 웃었다. 왕주오란도 록산처럼 5급이다.
"영어랑 일본어는 어려운데, 한국어는 배울수록 자신감이 생겨요" 중국 산둥 성 출신 왕주오란은 "젊은 사람들은 '재미'를 위해 틀리는 맞춤법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어려운 점은 있었다. 특히 발음이 문제였다. 중국어의 특성인 ‘성조’가 한국어에는 없기 때문이다. 문법도 마찬가지다. 왕주오란은 “‘-릴’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문장을 읽기 힘들어요”라며 “한자가 들어가는 건 그나마 쉬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나라 이름 익히기도 쉽다고 했다.

왕주오란은 과거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틀린 말을 한국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는 “틀린 말을 쓰는 한국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젊은 사람들은 ‘재미’로 그렇게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문자메시지나 인터넷 게시물에서 재미를 위해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는 이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올바른 맞춤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면서 일부러 틀리는 맞춤법을 쓰기보다는 제대로 정확하게 쓰는 게 좋죠”라고 강조했다.

왕주오란은 “한국어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언어는 어렵지만, 한국어는 배우기 쉬워요”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습득하기 쉬운 나라말이라는 뜻이다. 그는 “(덕분에) 저번 학기에는 장학금도 받았어요”라고 자랑했다.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가 제일 재밌죠”

기념관 앞줄서 유독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노란 머리에 귀티가 났다. 얼굴에 주근깨가 조금 있지만, 눈웃음이 선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라스(Johansen lars erik dahl·21)다.

록산, 왕주오란과 마찬가지로 5급인 라스는 SBS 주말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을 계기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앞서 만난 두 사람보다 더 어리기에 “한국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별말씀 없으셨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왔다.

라스는 “부모님께서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라며 “어리니까 하고 싶은 걸 다 하도록 배려해주세요”라고 웃었다.

라스는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문법’을 지목했다. 록산이나 왕주오란과 마찬가지로 한국어 문법이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라스는 “한국어에는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나 문법이 많아요”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쉬웠던 내용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영어를 따온 단어는 배우기 쉬웠어요”라고 답했다.
어려서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라스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이 제일 재밌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주변에 속담 속 '호랑이' 같은 존재는 없어요"라고 웃었다(옆의 여학생은 라스와 같은반으로 양해를 구해 함께 얼굴을 공개합니다)

라스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발생하는 ‘문법파괴’ 현상에 너그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지인들과 메시지 교환 시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말이 많아요”라며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라스가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재밌게 느낀 부분은 무엇일까?

“속담 배우는 게 재미있었어요. 많은 것을 배웠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라는 속담이네요.”

라스는 “혹시 주변에 속담 속 ‘호랑이’와 같은 존재가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없어요”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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