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친 표면과 단 맛 없이 구수함이 압도적인 갈색의 빵. 그 동안 우리에게 대표적인 건강빵의 이미지는 통밀 또는 호밀로 만든 빵이었다. 물론 이 빵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빵이다. 하지만 건강빵의 정의는 더욱 다양해졌다.
흰 빵은 많은 이들에게 애증의 징표가 되어 왔다. 보드라운 식감과 달콤한 맛, 빵과 어우러지는 온갖 재료는 한 입으로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반면 밀가루의 처리 과정과 설탕 과사용, 화학재료 과사용 및 저품질 유지 사용 등의 행태는 빵을 건강하지 못한 음식으로 분류하는 데 일조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붐을 일으킨 ‘천연발효빵’은 이런 대중적 인식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상당수의 공장제 빵에는 유통과 보존의 용이성 때문에 다양한 성분을 활용하기 마련이다. 제빵개량제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분이다. 제빵개량제를 사용하면 단 시간에 빵 반죽을 완성시킬 수 있다. 빵의 색도 좋게 나오고 부피가 더욱 커진다. 다만 여기에는 방부제, 인공첨가제 등도 포함되어 있다. 빵을 먹은 후 속이 더부룩한 현상을 겪는 이유 중 하나다.
반면 효모균 등을 사용해 자연 발효 시키는 빵은 첨가제가 필요 없다. 반죽 숙성 과정에서 필요한 효소를 알아서 만들어내고 전분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은 짧아지지만 그래서 더욱 신선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고 인공적인 맛을 없애기 위해 넣던 설탕 함량도 줄일 수 있다. 천연 발효 빵 특유의 산미가 있는 반죽은 치즈, 말린 과일, 견과류, 초코 등 다양한 부재료와도 잘 어우러 진다. 자연발효법을 거치면 꼭 호밀이나 통밀이 아닌 흰색의 밀가루를 사용하더라도 ‘맛있게’ 건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천연발효빵의 이 같은 특징은 대기업이 잠식한 베이커리 시장에서 작은 베이커리가 살아남는 키워드로도 변신했다. 천연발효법은 시간과 물량이 절대적인 대형 유통기업은 고집하기 힘든 조리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천연발효와 저온숙성을 거친 반죽은 질기 때문에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만큼 ‘잘 만들면’ 경쟁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남동 ‘오월의 종’, 여의도 ‘브레드 피트’ 등 천연발효종 빵을 기반으로 작은 베이커리는 그 맛과건강함으로 ‘동네 명물’에서 전국구 유명 빵집으로 거듭난 바 있다. 대형 베이커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맛과 이를 만들어낸 건강한 기법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서울 강남권과 홍대 앞을 중심으로 생겨났던 작은 베이커리들은 ‘작고 강한’ 건강빵의 면모를 시장에 알렸다.
최근 서울 공덕동에 매장을 낸 자연발효빵 전문 브랜드 ‘파네트’ 역시 이를 대변하는 케이스다. 파네트가 위치한 5호선 공덕역 인근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만 7개에 이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파네트가 살아남는 방법은 ‘수제’와 ‘자연발효’를 강조하는 것이다. 파네트에서는 매일매일 빵반죽을 만든다. 자연발효 공법의 특성상 반죽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작업은 새벽에도 진행된다. 공들여 만든 빵 반죽은 곧 따끈한 빵으로 재탄생하고 매장에 진열되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파네트는 각종 샐러드 드레싱과 잼도 직접 만들고 한 끼 식사에 알맞을 만한 양으로 소분해 판매한다. 단순한 빵집을 넘어서 건강한 식문화를 제안한다는 이 곳의 슬로건을 보다 간편한 형태로 구체화 해 제공하는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섰다. 더 이상 ‘사먹는 게 그렇지’라며 먹거리의 건강하지 않음에 관대하게 넘어가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상당수의 소비자들은 더 건강하고, 그래서 더 맛있다는 것을 선택한다. ‘건강빵’의 새로운 모습 역시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에 의해 탄생했다. 또 다른 건강한 맛을 찾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뉴스팀 f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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