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으로 각종 사업 이끌어
선거때마다 ‘눈먼 돈’ 빼먹기 혈안
“회원 800만명이 넘는 재향군인회가 계좌에 남은 돈이 수백만원뿐인 빈털터리가 됐다. 한 간부가 독단적으로 700억원대의 대출보증을 선 게 화근이었는데 이 간부가 검찰에 구속될 때까지 향군에선 아무도 몰랐다.” “재향군인회가 허술한 지급보증과 산하 사업단장의 횡령 등에 휘말려 790억원을 투자사에 물어주게 됐다.” 2012년 6월 주요 언론을 이렇게 장식한 이른바 향군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이다.
◆결국 터질게 터진 BW사건
사건은 예견된 것이었다. 문어발식으로 아파트 건설 등 각종 수익사업에 뛰어들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의 조사 결과, 향군은 코스닥 상장사인 G사 등 4개 중소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 업체가 BW를 발행할 수 있도록 지급보증을 서 줬으나 업체들이 돈을 갚지 못하자 대신 갚아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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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이권단체로 변질되고 조남풍 회장 취임 이후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는 재향군인회를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사진은 재향군인회(향군)가 위치한 서울 성동구 왕십리의 건물(구 에스콰이어빌딩). 연합뉴스 |


잊혀져 가던 BW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불거진 것은 지난 4월 조남풍(77·육사18기) 회장이 취임한 뒤, 조 회장이 선거 직전 대의원을 상대로 금품을 살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당시 ‘1인 500만원’이라는 액수와 돈을 전달한 날짜, 시간, 장소 등 금품 살포 정황이 담긴 선거캠프 내부문서가 나돌았다. 재향군인회 시·도지부장들에게는 적게는 10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씩 돌렸다는 말도 들렸다. 이전 선거 때와 비교해 몇곱절 많은 액수였다. 예비역 대장 출신으로 군인연금 이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조 회장 처지로 미뤄 볼 때 주변의 적잖은 사람들에게 손을 벌렸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과정에서 BW사건으로 향군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최씨가 자금줄로 다시 등장했다. 지난 7월7일 직원 간담회에서 노조 관계자가 “선거자금이 (BW) 횡령사건 관계자들로부터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조 회장은 “그 사람한테만 꾼 것이 아니다. (내 자금이) 고갈상태에 있으니까 이런저런 지원을 받았고 공짜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사실상 최씨 측에게서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조 회장이 취임 이후 최씨 수하인 조모씨를 향군 경영본부장에 앉혔던 배경이기도 하다.
보훈처 감사로 ‘불발’에 그쳤지만 최씨는 조씨를 이용해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구명로비를 시도했다. 결국 최씨는 지난달 21일 2심에서 횡령(149억원)과 사기(32억원)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1심 때 32억원 횡령, 3년형에서 형량이 곱절 가량 늘었다. 향군 관계자는 “BW사건은 현재진행형”이라며 “조 회장의 막가파식 전횡의 이면에는 향군이 보유하거나 운영할 예정인 사업체 또는 이권에 개입하려는 이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향군 산하에는 법인 7개와 직영사업체 3곳이 있는데 대부분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지 않은 상태다. 5516억원에 달하는 빚은 2009년 리먼 사태 때 짊어진 것으로 산하 사업체의 운영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비역 장성들로 대물림된 향군회장은 향군의 각종 사업을 주먹구구식으로 이끌었다. 자연히 회장 선거 때마다 선거자금을 대주고 ‘눈먼 돈’을 빼먹으려는 인사들이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최씨 또한 선거자금을 빌려주고 조 회장을 주무르려 했을 개연성이 높다.
현재 향군이 정부로부터 20년간 무상지원받는 송파신도시 3만3000㎡(1만평) 부지 개발은 이미 마스터플랜이 다 짜여진 상태다. 실시설계 발주를 위한 공모 준비 및 공모, 설계안은 내년 상반기 중으로 확정된다. 공사비만 4200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이권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검찰의 수사가 무산될 경우 과거부터 이어져 온 향군 비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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