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통용되는 '열역학 제1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 새로 만들어지거나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즉 일로 바뀐 열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했거나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내용이다.
따라서 영원히 에너지를 내는데 외부의 열을 공급받지 않는 영구기관은 존재할 수 없다. 작가 주호민의 웹툰 '무한동력' 속 선생님은 "무한동력을 개발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고까지 단언한다.
그럼 '열역학 제1법칙'의 원리를 웹툰과 뮤지컬 사이에 적용해보자. 배우 박희순의 첫 연출작으로 주목 받은 뮤지컬 '무한동력'은 주호민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제목의 무한동력은, 맞다 그 영구기관을 가리킨다. 웹툰으로 성공한 만화라는 에너지가 무대라는 형태로 바뀌어 뮤지컬로 그대로 옮겨가는 것이니 단순히 원리상으로는 '에너지 보존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을 옮기는 일에서 발생하는 열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얼마만큼 정교하게 옮겨지냐다.
물론 웹툰과 뮤지컬은 장르적 속성이 다르다. 뮤지컬이 자신의 장르 미덕에 얼마만큼이나 가닿았는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 원작의 가치관을 그대로 옮겨올 것인가, 아니면 아예 색다르게 재해석할 것인가는 창작자의 판단이다. 근데 뮤지컬 '무한동력'은 원작의 가치관을 그대로 가져온다. 그 중심에는 꿈과 사랑, 그리고 감동이 있다.
주인공들의 성격 역시 대부분 그대로 가져왔다. 대학을 막 졸업한 '장선재'는 대기업 취직을 목표로 하고 한울동의 '한수자'네 하숙집에서 지내기로 한다.
근데 그 하숙집은 이른바 '마이너'로 보이는 인물들이 모여있다. 하숙집 주인 '한동식'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무한동력기관'을 만드는데 빠져있는 괴짜다.
공무원 시험에 매번 낙방하는 '진기한', 현대무용을 전공하다가 집안사정으로 그만두고 이벤트 알바를 뛰고 있는 4차원 캐릭터 '김솔', '무한동력'에만 집중하는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한수자,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수자의 동생인 '한수동' 역시 사회의 중심에 선 인물들은 아니다.
뮤지컬은 웹툰처럼 무한동력기관을 만드는 괴짜 발명가의 하숙집에 모여든 청춘들이 녹록지 않은 현실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유쾌하면서 따뜻하게 그린다.
다만 만화가 워낙 착한 탓에 3차원인 뮤지컬로 옮기면 심심해질 수 있다. 2차원인 웹툰은 상상의 여지가 있는데 뮤지컬은 실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은 원작의 여백을 아기자기함으로 채운다. 아기자기한 안무가 많이 들어간 이유로 보인다.
'무한동력'은 원작이나 뮤지컬에서나 '살아 있는 꿈'을 뜻한다. 뮤지컬은 그 꿈을 더 꿈틀거리게 만든다. "당신의 심장이 무한동력"이라고 노래하는 이유다. 한원식은 괴짜의 이미지보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에너지 넘치는 인물로 그려진다. 즉 꿈을 좇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무한동력'이 가동되면 기계 꼭대기에 있는 말의 형상의 눈에 불이 켜지는데 이 말의 이름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말의 이름을 딴 로시난테다.
뮤지컬의 단점은 장면이 갑자기 전환되고, 맥락이 뚝뚝 끊긴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웹툰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약간 부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원작의 힘을 빌린 몇몇 장면은 그 장면만으로도 울림이 크다. 주호민의 또 다른 작품인 '신과 함께'는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신과 함께 - 저승편'(연출 김광보)으로 옮겨져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가늘고 길게' '저 커다란 세상' 이지혜 작곡가 곡들은 대체로 귀에 감기는 편이다. 기존의 멜로디컬한 넘버 뿐 아니라 록과 랩, 컨트리, 한국식 정서와 처연하면서도 재미있는 인디 분위기가 중심인 이른바 '장기하 스타일'로 통하는 곡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이지혜 작곡가는 대본과 작사를 맡았는데 뮤지컬 '위키드'의 감칠맛나는 번역으로 유명했던 그녀답게 노랫말과 대사가 생생하다.
'무한동력'이 맨 처음 나왔을 당시는 PC통신의 말기였고,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뮤지컬은 시대에 맞게 진기한이 즐기는 스타크래프트 대신 '리그 오브 레전드'(롤)로 게임을 변경했다. 김솔의 직업은 원작에서는 네일아트사였다.
냉장고 등 온갖 가전기구와 철물이 쌓여 만들어졌던 무한동력 자체의 이미지는 10여 개의 크고 작은 바퀴로 대체됐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대신 모던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기대했던 애잔한 모습이 아니라 일부 실망할 관객들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이 바퀴들이 전부 돌아갈 때는 쾌감이 있다. 진기한은 본래 전공인 수의학을 다시 공부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개(犬) '난봉이'는 인형으로 대체된다. 등장인물들이 천연덕스럽게 대놓고 실제 개 취급을 하니 어색하지 않다.
배우들은 신인 위주의 청춘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4일 오후 6시 공연의 장선재역 이상이는 '베어 더 뮤지컬'에서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 주목 받은 배우인데 안정감 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이번이 뮤지컬 데뷔작인 진기한 역의 이강욱은 진기한의 엉뚱한 매력을 제대로 살린다. 한원식 역의 김태한은 작품의 유일한 중견 배우로 중심을 잡는다.
거칠게 마무리되는 장면을 매끈한게 다듬으면 웹툰 보존의 법칙을 어느 정도 지켰다고 볼 수 있겠다.
상반기에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로 주목 받은 페이지원(PAGE1)의 신작이다. 2016년 1월3일까지 대학로 TOM1관. 장선재 박영수·박정원·이상이, 한원식 김태한·이한밀, 진기한 이강욱·유제윤, 한수자 박란주·함연지, 김솔 안은진·김다혜, 한수동 김지웅·김경록. 프로듀서 이성일, 드라마투르기 한정석, 무대디자인 오필영. 주최 우란문화재단, 5만~6만원. 인터파크. 1544-1555
웹툰 보존의 법칙 ★★★
<뉴시스>뉴시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