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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만史설문] 중동의 쐐기문자에도 로제타스톤 같은 ‘베히스툰’ 있었네

입력 : 2015-08-23 21:44:02 수정 : 2015-08-23 21: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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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서양의 금석학 동양(중국) 금석학의 한 줄기가 진시황의 ‘문화테러’ 분서갱유(焚書坑儒)가 빚은 상처의 치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서양의 금석학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 그리스 등 유럽(지중해)의 고대 역사를 추적하기 위한 각종 데이터의 해석에서 그 본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일강 상류 아부심벨 사원의 람세스 2세 석상이 아스완 댐 건설(1971년)로 인한 수몰을 피해 옮겨지고 있는 모습.
유네스코 제공
서양 금석학의 시초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모양 글자와 ▲신이 주재(主宰)한다는 이집트의 신성(神聖)문자에 대한 궁리다. 이런 바탕 위에 그리스 일대의 고대문자인 ▲선상문자 B(線狀文字 B)에 대한 연구가 그리스 금석학에 불을 댕겼다.

그 존재나 의미 등이 잊힌 채 전설이 되어가던 쐐기문자와 상형문자의 뜻을 찾아낼 수 있게 한 도구가 바로 석각(石刻) 즉 돌에 새긴 기호였음을 생각한다. 취업 상식시험에도 자주 출제되는 ‘신의 바위’ 베히스툰과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돌 로제타스톤 얘기다.

베히스툰 비문. 설형문자를 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위세를 과시하는 다리우스 1세 위에 조로아스터교의 신(神) 아후라 마즈다가 있다. 그림의 사람 크기는 실제 사람 크기 정도다.
지중해 로제타에서 나온 비석에 서로 다른 3개의 문자로 새겨진 같은 내용의 문장을 1832년 풀어 마침내 상형문자를 해석했다. 프랑스의 천재 언어학자 샹폴리옹과 그의 해석 과정은 이미 유명하다. 그 돌은 인류 (문자) 역사의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인류사의 역사적 돌’이라고나 할까. 런던의 영국박물관(더 브리티시 뮤지엄)에 있다.

유럽우주기구(ESA)가 태양 주위의 혜성 ‘67P’로 쏘아올린 탐사선이 ‘로제타’다. 2004년 지구를 떠나 10년여 60억㎞를 비행해 작년 혜성 궤도에 들어섰다. 탐사로봇 ‘필라이’(Philae)를 혜성에 내려 보내는 등 임무를 계속하고 있다. ‘필라이’는 나일강 상류의 유서 깊은 고대사원이다. 람세스 2세 상(像)이 있는 아부심벨 사원과 함께 누비아 유적으로 불린다.

쐐기문자의 발생지는 중동지역,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인 메소포타미아 일대다. 일반적으로 이집트 (상형문자) 역사보다 먼저 시작된 것으로 평가된다. 근대 이후, 이집트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착취의 대상으로) 주목을 더 받은 까닭에 일반의 인식은 ‘이집트가 먼저’ 하는 식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이 지역 또한 당시 그 문명이 화려했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결정적인 자료 로제타스톤.
영국박물관 제공
덜 굳어 표면이 말랑말랑한 점토판에 갈대 같은 끝이 뾰족한 것으로 쐐기 모양의 흔적을 찍은 것이 쐐기문자다. 수메르 인들의 문자이며, 문자학적 구분으로는 한자나 이집트 신성문자 같은 그림문자(상형문자)의 일종이다. 이집트문자처럼 뜻이나 구성, 활용 방법 등이 모두 잊혔으나 옛 사람들이 돌에 남긴 기호와 그림을 되짚어 찾아냈다.

기원전 3100년경부터 쐐기문자가, 곧이어 이집트 상형문자가 기원전 3100∼3000년에 시작됐다고 본다. 기원전 18세기에 그리스 지역 크레타의 선상문자 A가, 기원전 15세기에 선상문자 B가 시작됐다고 한다. 지중해 일대의 문자 관련 연대기(年代記)다.

‘눈(안·眼)에는 눈, 이(치·齒)에는 이’라는,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동해·同害)의 복수(復讐)를 특징으로 하는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00년경)은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적혔다. 고대 바빌론의 왕 함무라비가 제정(制定)했다. 발견 무렵에는 그 뜻을 알지 못했겠다.

이 문자(체계)는 처음엔 장식이거나 새가 지나간 자리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일정한 규칙성을 가진 문자일 것이라는 추측 등 상당히 진전된 해석이 나왔다. 1800년경의 일이었다.

이란 자그로스 산맥의 깎아지른 절벽 중간쯤에 규모 큰 부조(浮彫·릴리프) 그림과 세 종류의 문자가 있다. 베히스툰 비문(碑文)으로 불리는 이 유적은 오래전부터 ‘중동의 로제타스톤’으로 인식되어 왔다. 세 문자를 비교해 뜻을 풀면 안개 숲에 갇힌 문자들의 뜻과 그것이 품은 역사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였다. 베히스툰은 ‘비시툰’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아래의 길은 고대 무역로의 요충지였다. 다리우스 1세가 기원전 521년 페르시아 제국을 일으켰을 때 만들도록 명령했다. 부조는 활을 쥐고 누워 있는 인물의 등을 밟고 서 있는 위엄 있는 다리우스 1세를 그렸다. 승리의 모습일 터다. 아래에는 1200행에 달하는 긴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길에서 100m 이상 절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위험한 위치에 이 기념물이 있기 때문에 쉽게 떠내어 사본(탁본)을 만들 수 없었다. 중동지역의 언어에 두루 밝은 영국군 장교 출신 헨리 롤린슨이 10년여의 노력 끝에 1847년 마침내 비문 전체의 사본을 만들 수 있었다.

로제타스톤이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법을 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베히스툰 비문이 설형문자를 쉬 풀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본의 많은 문자들이 연구되는 과정에서 차츰 이를 읽고 쓰는 방법이 드러났다. 로제타스톤 해석에 이은 문화사적 사건으로 185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이 두 문자는 오래전부터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화는 후세로 전승된다. 오늘날 서양언어의 이모저모에는, 정신과 함께, 그 문화의 흔적이 담겨 있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사족(蛇足)

영어로 금석학은 에피그래피(epigraphy)다. ‘고대의 기념비적인 문건에 관한 연구’라고 해석한다. 어원은 그리스어 epi-graphe, ‘어디(위)에’라는 epi-와 글(문장)의 뜻 단어의 조합이다. 따로 생겨난 연구 분야인데도 어원적으로 동서양이 흡사하다. 금석학(金石學)은 (고대의) 쇠 그릇이나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뜯어보는 공부다.

1970년대 영국 록그룹 킹 크림슨의 노래로 인해 epi-라는 말에 익숙한 이들이 많을 듯하다. ‘묘비명(墓碑銘)’이란 으스스한 제목의 노래, ‘혼돈(混沌·confusion)이여, 너는 내 묘비명(에피타프·epitaph)이 되리라!’하는 가사 얘기다. epi-와 무덤(tomb)을 뜻하는 그리스어 taphos가 합쳐진 말이다. 에피타프 또한 금석학의 재료다.

무덤도 ‘고고학의 보금자리’라 할 만큼 이 분야에서 중요하다. ‘상상의 바다’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휘황한 신라의 금관(金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상상해보라. 껴묻거리 즉 부장품(副葬品)만으로도 옛 무덤은 골동품(骨董品)의 창고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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