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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靑에, 黨에 ‘레드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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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06 21:50:49 수정 : 2015-08-06 21: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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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순응 사고에 갇혀 실패 자초한 케네디
청와대도, 여야도 실패 위험 줄일 소통·의사결정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빨간 깃발을 꽂자 회의가 격렬해졌다고 한다. 리더십과 무관치 않은 변화다. 지난 3월 취임한 신한은행 조용병 행장이 도입한 ‘레드팀(Red Team)’ 제도로 인해 임원회의에 새 바람이 부는 것이다. 새 요령은 간단하다. 레드팀으로 지정된 2인 1조의 부행장은 회의 안건에 무조건 반대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니다. 합리적 반대 논리를 발굴해 생산적 토론을 낳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

레드팀 제도는 집단 순응 사고의 위험성을 낮추는 나름 검증된 비책이다. 군 작전을 비롯한 각종 조직 실패 사례들이 반면교사가 됐다. ‘넛지’ 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와이저’에서 “레드팀을 운영하라”고 조언한다. 온통 지뢰밭 같은 세파를 견뎌내려면 집단의 확신과 의사에 반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왜 그런가. 인간 속성상 앞서 발언한 3명이 같은 견해를 취하면 4번째 발언자는 반대 논거를 가졌더라도 입을 다물기 일쑤여서다. 사고 획일화를 피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집단은 개인보다 더 극단화하는 경향도 있다. 파국을 부르는 경향이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1961년 쿠바 피그스만 침공 작전의 대실패를 겪은 것도 그래서였다. 경고 휘슬은 없었다. 레드팀이 없었던 탓이다. 레드팀은 파국을 막을 안전장치다.

레드팀 얘기가 어찌 들리는지 정치권에 묻게 된다. 왜? 정치권이야말로 레드팀 기능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당은 정당민주주의 보루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을 그렇게 볼 유권자가 몇이나 될까. 당내 의사결정 과정부터 엉터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도 문재인 대표의 ‘빅딜론’을 놓고 중구난방을 거듭했다. 독단, 독선, 혼선, 갈등의 난맥상이다. 매사에 이런 식이다. 새누리당도 대동소이하다.

여야가 국회에 모이면 더 가관이다. 둘 다 반대를 위한 반대엔 능숙하지만 레드팀 취지에 걸맞은 합리적 반대 역할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못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어디로 굴러가겠나. 정치 불신은 괜히 쌓이는 것이 아니다. 자승자박이다. 레드팀 제도 활용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일개 은행도 하는데 정치권이 왜 못하겠나. 당 내부에서만 그럴 일도 아니다. 국회 본회의·상임위에서도 생산적으로 작동하도록 신사협정을 맺을 일이다. 그렇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국민 눈높이에서 뭔가 결정하고 뭔가 입법하게 될 수 있다. 정치 불신을 덜 수 있다는 기대도 생긴다. 여든 야든 그런 노력도 없이 내년 총선, 후년 대권에 눈독을 들인다면 국가적으로 재앙이고 비극이다.

레드팀 제도가 가장 긴요하게 쓰일 곳은 역시 청와대다. 권력이 집중되는 곳에선 집단 순응 사고의 위험성도 극대화하는 법이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다른 사고·판단을 하면 배척되는 것이다. 현 정부의 전반기도 그런 과정을 답습했다. 반론의 길을 열어놓는 것은 성공 확률을 높이는 불가결한 요소다. 임기 반환점이 눈앞(25일)이다. 성공 시스템 활성화를 위해 조속히 손을 봐야 한다. 레드팀이 희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4대 구조개혁 완수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대통령 의지만으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부터 날개를 달고 창공으로 치솟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제 대국민 담화가 공허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다. 담화에 앞서 레드팀을 가동했다면, 그리하여 청와대 차원에서 추진 가능한 개혁 로드맵 등도 가미해 설득력을 높이면서 국민 지지를 당부했다면 반향의 강도가 어땠을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기자 문답 생략이 옳았는지도 되돌아볼 일이고.

4대 개혁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소통과 의사결정 방식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레드팀이 아니더라도 집단 순응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는 방향 모색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서두를 일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케네디의 후회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케네디는 피그스만 실패 이후 땅이 꺼지게 탄식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내가 그런 침략을 허락할 만큼 어리석었단 말인가”라면서.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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