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관리 ‘비변사’·제례 담당 ‘봉상시’…
도성안 정부기구 다룬 ‘한양의 탄생’
1865년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는 서울과 지방의 사무를 전부 비변사가 맡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며 “의정부와 비변사를 합하여 하나의 관청으로 삼으라”는 하교를 내린다. 당시 비변사는 국방과 재정을 맡는 관리와 암행어사처럼 특별한 관직에 오를 사람을 추천했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각종 현안을 정리해 임금에게 보고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다. 풍양 조씨인 신정왕후는 안동 김씨가 장악한 비변사를 혁파해 세도정치를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이런 역사를 가진 비변사의 청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대로에서 500년간 자리를 지킨 의정부와 달리 여러 번 옮겨 다녔다. 16세기 중반 처음 생겼을 무렵에는 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 부근에 있었고, 남산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창덕궁 돈화문과 경희궁 흥화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비변사가 궐내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폐지될 때까지 궁 밖을 떠돌았다.
‘한양의 탄생’(글항아리, 1만9000원)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었던 다양한 관청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가 엮은 첫 번째 ‘서울장소인문학 총서’로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 김문식 단국대 교수, 노경희 울산대 교수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상의원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상의원은 왕실 가족의 의복을 담당한 관청이었지만, 값비싼 직물과 금은보화를 보관하는 보물창고이기도 했다. 또 도성 밖 거주민을 위한 의료기관인 활인서에서는 무당을 통한 주술 치료가 이뤄졌다. 이밖에도 제사를 총괄한 봉상시,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서책을 간행한 주자소와 교서관, 음률을 주관한 예술의 정점이었던 장악원, 천문학과 지리학을 연구한 관상감 등의 기능과 역사를 설명한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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