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 지난 올해 ‘2016년형 쏘나타’가 나왔다. 벌써 7세대 풀체인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그간 쏘나타는 국내외에서 75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30년 쏘나타의 상전벽해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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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디젤·터보·PHEV 등 7가지 쏘나타
13일 현대차에 따르면 30년 전 1세대 모델은 ‘VIP를 위한 고급 승용차’를 표방했다. 국내 처음으로 시트와 백미러가 자동으로 조절됐고 1800·2000cc급 모델로 출시됐다. 2016년형 쏘나타는 ‘1.7 디젤’, ‘1.6 터보’, 충전식인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 라인업이 7가지로 늘었다. 최대 엔진 배기량은 다운사이징 열풍으로 1999cc로 낮아졌다.
30년 시차를 둔 쏘나타의 최대 배기량 차이는 고작 2cc다. 하지만 초창기 원시적인 크루즈 기능은 앞차와 간격을 설정한 대로 달리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발전했고, 운전석 선택사양이던 에어백은 이젠 기본 7에어백 시스템으로 늘어나는 등 서른살 쏘나타는 꽤 똑똑해지고 안전해졌다.
이처럼 쏘나타는 7세대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기능을 채택했고 여러 기록도 남겼다.
쏘나타 1세대는 1400·1600cc로 출시된 스텔라의 차체에 1800·2000cc급 엔진을 얹었다. 1985년 출시 첫해 1029대만 팔릴 정도로 부진했다. 하지만 쏘나타 II, EF·NF·YF·LF쏘나타로 이어지며 국내 최장수 자동차로 입지를 굳혔다.
1988년에 나온 2세대 모델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수출전략형 고급 세단’으로 4년반 동안 3000억원이 투자됐다. 당시 ‘엘란트라’나 ‘퀘스트라’ 등으로 차명 변경이 검토됐지만, 전체 생산량의 70%를 수출할 계획이라 미국 현지에서 지명도가 높은 쏘나타를 계속 쓰기로 했다. 빙판길에서 강점을 보이는 전륜구동, 넓은 실내공간 등으로 호평을 받았고, 그해 11월 3277대가 국내 중형차 최초로 미국행 배에 선적됐다.
중형차 대중화 시대를 연 건 3세대 모델(쏘나타 II)이다. 1993년 5월부터 33개월간 60만대가 팔리며 누적 판매 100만대 달성의 공을 세웠다. ‘그랜저’의 전신인 ‘마르샤’ 탄생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1998년 나온 EF쏘나타(4세대)는 IMF 구제금융 여파로 초기 판매가 부진했지만, 이듬해 2월부터 19개월간 국내 판매 1위를 기록했다. EF쏘나타의 부분변경 모델은 미국 시장조사 업체 JD파워가 진행한 신차 품질조사에서 중형차 1위에 올라 북미에서 현대차 지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2002년 12월 중국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하면서 쏘나타는 현지 전략 중형차 자리도 꿰찼다.
2004년 9월 NF쏘나타(5세대)가 출시됐고, 이듬해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준공과 함께 미국산 쏘나타가 생산됐다. 2009년 9월 출시한 YF쏘나타(6세대)는 중국에서 10만대 판매를 넘긴 현대차의 첫 중형차였고, 2011년 하이브리드 모델로도 출시됐다. 지난해 기본기의 혁신을 화두로 LF쏘나타(7세대)가 출시됐고, 올해 디젤과 터보 등 라인업이 확대되면서 또다른 미래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브로몽의 아픔 딛고 일어선 쏘나타
쏘나타가 30년 동안 성공의 역사만 쓴 것은 아니다. 특히 브로몽 투자 실패를 두고는 “현대차 수출 10년을 늦췄다”는 악평도 있고 “해외진출의 쓴맛을 알게 한 밑거름”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현대차는 쏘나타 출시 무렵 북미 수출기지로 캐나다 퀘벡주 브로몽시를 낙점했다. 주요 부품을 우리나라에서 조달해 현지에서 조립하는 시스템으로, 차체 조립·도장·의장 등 3개 라인을 구성하기로 했다. 1986년 9월 착공한 브로몽 공장은 2억5000만달러가 투입, 1989년 연산 10만대 양산체제로 완공됐다.
그러나 한국 내 노사분규로 부품 공급이 지연됐고,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캐나다 자동차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다. 현지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 20만대로 생산능력을 확장할 계획까지 있었지만 연간 생산량은 2만대 안팎에 머물렀다. 시장조사는 물론이고 마케팅 전략도 일본과 미국 업체에 뒤졌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현대차는 생산 차종을 쏘나타보다 작은 엘란트라로 바꾸려고 하다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93년부터 공장 가동을 무기한 연기했고, 1996년 공장을 운영하는 현대모터캐나다를 청산했다. 브로몽 공장에서 생산된 쏘나타는 5년간 10만대가 안 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브로몽에서 성공했다면 해외에서 지금보다 입지가 굳어졌겠지만 당시 북미 자동차 시장이 침체기였다”며 “브로몽의 실패 후 현대차의 해외진출 및 마케팅 전략이 성숙해진 것도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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