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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안수정등에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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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2 21:36:00 수정 : 2015-06-12 2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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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에 움츠려 있는 사람들
두려워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확인한다. 세계는 하나라고. 박쥐의 아픔이 낙타의 아픔이 되고 낙타의 아픔이 인간의 아픔이 되고 있다. 어제 중동의 불행이 오늘 우리의 불행이 되고, 어제 그의 불운이 오늘 우리의 불운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일 또 나의 불운이 될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손을 씻는다.

카뮈의 ‘페스트’가 생각난다. “페스트 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전투적인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 소설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상황이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오랑의 페스트! 페스트 사태로 도시가 폐쇄된다. 갇힌 도시! 도시 밖의 사람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도시 안에서는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전염병이므로. 나갈 수 없는 그 오염된 도시로 누가 들어올 것인가. 목숨 바쳐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연인도 안타까워만 할 뿐 연인을 찾아 오염 속으로 걸어들어가지는 않는다. 그 오염 속으로 걸어들어간 사람은 딱 한 사람, 오랜 세월 결혼생활을 해온 늙은 의사 카스텔뿐이었다.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부인을 찾으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움츠린 나를 보며 또 한번 인간의 조건을 생각한다. 톨스토이가 그의 ‘참회록’에서 인용했던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상황, 그것은 원래 ‘불설비유경’에 들어 있는 이야기였다.

나그네가 들판에서 성이 난 코끼리를 만났다. 두렵다고 생각할 정신도 없이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던 나그네는 우물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우물가에 있는 등나무 넝쿨을 타고 우물 속으로 내려가 몸을 숨겼다. 그런데! 넝쿨에 의지해 내려가다 보니 우물 속 사방에서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나그네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물속에서는 독룡이 나그네를 노려보고. 더 기막힌 것은 그가 잡고 있는 넝쿨을 흰쥐, 검은쥐 두 마리의 쥐가 쏠고 있는 것이었다.

내려갈 수도 없고, 올라갈 수도 없고, 멈춰서 있을 수도 없는 상황,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데 갑자기 이마에서 입속으로 꿀이 흘러들어간다. 나무의 벌집에서 꿀이 흐른 것이다. 나그네는 매달린 채로 꿀맛에 취해 있다. ‘불설비유경’은 그 상황을 인간의 상황으로 본 것이다.

톨스토이는 왜 저 안수정등 이야기를 좋아했을까? 하찮은 꿀에 값싼 위로를 받는 허무한 인생에 대한 경고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네 인생은 분명히 예정된 파멸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는 인생도 어리석지만, 종말만을 염두에 두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쉽게 자포자기하는 인생도 보기 싫다.

분명 인생은 유한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지구별에 왔다. 배우기 위해서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만남에 집중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과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만남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상대가 묻는 말에 진심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떠한지. 나에 대해 진지하지 않고 상대에 대해 진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근대 이후 우리 선불교의 최고의 선승이라고 하는 용성선사가 전강선사에게 물었다. 우물 속에 갇힌 나그네가 어찌하면 출신활로(出身活路)할 수 있을까. 전강선사는 이렇게 답했단다. “달다!”

전강의 “달다!”는 달콤한 꿀에 집착해 안수정등의 상황을 잊고 있는 어리석음이 아니겠다. 그것은 차라리 살 궁리를 하면 할수록 까마득한 절망만 찾아드는 허무의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겠다. 그것은 독룡 같은 삶이 굶주린 창자를 벌리고 ‘나’를 기다릴지라도, 달려드는 코끼리 같은 몰락이 그 큰 힘으로 ‘나’를 치려 할지라도, 무쏘의 뿔처럼 당당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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