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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4500년 신비’ 용늪 속으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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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1 06:00:00 수정 : 2015-06-25 17: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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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지구 지키는 창조의 길] 내부 공개 앞둔 고층습원 대암산 용늪은 어떤 곳…‘썩지 않은 이탄층’ 차곡차곡… 한반도 식생·기후변화 보고
“억!” 갑자기 사진기자가 외마디 소리를 냈다.


20년 넘게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다가 오는 8월 일반 개방을 앞두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의 내부를 카메라에 담던 중이었다. 용늪 내부를 관리하기 위해 나무로 대충 만들어놓은 길 사이로 다리가 빠진 것이다. 사진기자가 힘겹게 다리를 빼는 것을 보다 못해 취재기자가 목도(木道)에서 내려가 거들었지만 안내하던 자연환경해설사 이종열(57)씨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마침내 사진기자가 빠져나오자마자 이씨는 거들던 취재기자에게 “얼른 올라오라”고 말했다. 의아해 하는 취재진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이탄층(泥炭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통 생물이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야 하는데 죽은 뒤에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퇴적층이 이탄층이다. 7월에도 비바람 불면 손이 시릴 정도로 낮은 기온과 1년 중 170일 이상 안개에 휩싸여 습도가 높은 용늪의 기후가 이탄층을 만들어냈다. 1년에 1㎜ 정도가 쌓이는데 평균 1m인 용늪의 이탄층은 역사가 4500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탄층에는 한반도 수천년의 식생과 기후변화의 자료가 담겨 있다. 그제야 자세히 보니 진한 갈색의 이탄층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이씨는 “땅속에 이탄들이 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연결돼 있어 사람이 밟으면 지름 10m 정도 충격이 전달되고 요즘처럼 가물면 작은 충격에도 부스러지기 쉽다”면서 “그러면 수천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늪은 대암산 남서쪽의 해발 1280m의 고지대에 위치한 1.36㎢ 넓이의 구릉지대다. 습지가 산꼭대기에 형성된 고층습원은 국내에서 용늪이 유일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지형으로 생태·학술적 가치가 높다.
◆다양한 생명 키워내는 용늪 습지


용늪은 대암산 남서쪽의 해발 1280m에 위치한 1.36㎢ 넓이의 고층습원이다. 희귀한 고층습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천연기념물 246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97년 국내 최초의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됐다.

용늪을 찾은 지난 4일은 마침 우루과이에서 제12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중이었다. 희귀하거나 생물다양성 면에서 중요한 습지인 람사르습지는 세계 2193곳 중 21곳이 우리나라에 있다.

벌레를 잡아먹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
과거 습지는 모기떼가 창궐하는 음습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이며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홍수를 조절하는 습지의 역할이 알려지며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특히 습지는 지상에 존재하는 탄소의 40%를 저장할 만큼 기후변화 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목도를 걸어가며 해설사는 용늪의 여름 꽃들을 하나씩 설명해줬다. 산 중턱에서 자라는 라일락 사촌 꽃개회나무, 꽃잎을 차로 끓이면 그윽한 향이 일품인 함박꽃나무,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이 수줍어하며 맞았다. 한낮이라 동물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곳곳에 고라니, 노루, 토끼 등의 발자국이 보였다. 멸종위기 1급인 산양이 겨울이면 대암산에서 용늪으로 내려오고 멸종위기 2급인 삵도 간혹 관찰된다고 했다.

안개와 눈 등에서 수분을 얻는 습지는 늘 축축하게 젖어 있다. 물이 마르지 않는 용늪도 최근 극심한 가뭄 때문에 물이 살짝 고여 있어야 할 작은 웅덩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용늪의 깃대종인 비로용담은 심각한 가뭄 탓인지 지난 4일 용늪 내부에 들어갔을 때는 만날 수 없었다. 자연환경해설사 이종열씨가 지난해 7월 촬영한 모습.
◆습지 위협하는 기후변화·훼손


용늪의 깃대종(특정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하는 생물)인 비로용담은 볼 수 없었다. 해설사는 “올해 너무 가물어서 출현 안 한 종이 많다”면서 “아직까지는 자연이 감당할 수준이지만 더 심해지면 멸종위기종이 사라질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용늪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소양호는 극심한 가뭄으로 바닥까지 드러나 처참한 모습이었다. 물이 마르지 않는 용늪도 지하수위가 현저히 낮아지면서 물이 고여 있어야 할 작은 웅덩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뭄이 지속하면 습지가 말라 육지화될 위험이 높아진다.

용늪마을의 이장을 지낸 이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이곳에 와 봤다고 한다. 용늪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 ‘빠지면 죽는다’는 형들의 말 때문에 겁이 나서 큰용늪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에게 “가뭄으로 바짝 말라 신비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자, “이러다가도 비 몇 방울 떨어지면 안개가 밀려오면서 금세 넓이를 가늠하기 힘들어진다”면서 “그럴 땐 정말 용이 승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꽃잎을 말려 차로 끓이면 그윽한 향이 일품인 함박꽃나무.
오랫동안 용늪의 변화를 지켜봐 온 그는 인위적 훼손을 안타까워했다. 주변 군부대는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해 용늪 보전관리에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생태계에 간섭해 훼손시킨 주 원인자다.

주변의 나무들이 점점 커가는 것도 습지가 산림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복원 역시 자연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곳곳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나무가 바로 옆에서 늪으로 씨를 계속 날리지만 습지식물들은 나무가 살기 어려운 산도와 습도를 유지해 침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산림과 늪이 공존하는 자연의 위대함에 종종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4500년 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대암산 용늪의 이탄층에는 한반도 수천년의 식생 및 기후변화 자료가 담겨 있다. 높은 습도와 낮은 온도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생물이 죽은 뒤에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이탄층은 진한 갈색을 띤다.
◆내부 공개, 생태탐방의 의미 살려야


정부가 탐방객을 늘리고 용늪 내부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한 데에는 생태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깔려 있다. 환경부 정호경 자연정책과 서기관은 “20년 전에는 보전이 필요한 곳에 선을 긋고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오히려 관리가 안 되고 지역주민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해 보호 효과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황인철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은 “주민들에게 경제적 이득과 자긍심을 주고 환경보호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게 생태탐방의 원래 의미인데 이에 맞지 않게 진행되는 곳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지역주민이 어떻게 참여하고 지역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오고 환경적인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발 700~1800m 산 중턱에서 자라는 라일락 사촌 꽃개회나무.
원주지방환경청 자연환경과 송호열 팀장은 “용늪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방을 추진하고 방향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용늪 해설사 이종열씨는 “이곳을 찾는 분들이 내 나라 산하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를 아끼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하루 몇 명이 온들 문제가 되겠느냐”면서 “내부 공개가 습지의 가치를 깨닫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제=글 윤지희 기자, 사진 김범준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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