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지혜 좇는 미래세대 롤 모델 현재 한류의 견인차는 뭐니 뭐니 해도 K-팝(한국 대중가요)이다. K-팝을 이끌고 있는 인물의 면면을 보면 박진영, 양현석, 이수만, 유희열 등 여럿 있지만 그중 단연 박진영이 돋보인다. 그에게는 한국문화의 트렌드를 견인하는 힘이 있다.
박진영은 현재 JYP의 대표이지만 동시에 작곡가·작사가·가수·춤꾼이면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인먼트이자 문화코드이다. 그는 ‘딴따라’이기를 자처한다. 그 때문에 대중음악인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한다. 대중음악 연예기획사로서는 현재 양현석의 YG가 최고의 주가와 매출을 기록하고 있고, 이에 앞서 가장 먼저 K-팝을 이끌었던 SM의 이수만을 들지 않을 수 없지만 대중음악의 개인적 기여도로 볼 때 박진영을 추월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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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
그의 대중음악계의 영향력은 올해 4회째를 맞은 SBS의 ‘K팝스타 오디션’ 프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참가자들의 상당수가 그가 작곡한 노래를 들고 나오며, 노래한 뒤 그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의 반응을 살피면서 성공과 실패를 예감한다고 한다.
그의 예술본능은 본능적으로 노래와 춤에 반응하면서 표정을 드러내기에 진솔하며,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의적절한 충고와 예를 들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진심과 참가자의 심정이 하나가 되는 가운데 심사평을 하기 때문에 신참들에겐 그보다 좋은 선생은 없다. 최근 그는 신곡 ‘어머님이 누구니’를 발표했는데 소속사 후배들보다 음원차트 판매량에서 앞서자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자신감 있는 선배이지만 밉지 않은 선배이고,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서태지 이후 가장 기대되는, 온 몸으로 예술하는 아티스트이다.
박진영의 성공은 단순히 훌륭한 대중예술가이고, 성공한 기업가이기 때문에 붙이는 이름이 아니다. 그는 특정 문화 분야를 떠나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아울러 이성을 겸비한 신세대 혹은 미래사회 모델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한국사회의 위선적인 문화풍토에서 태어난 돌연변이형 인간인 것 같다. 욕망의 표출에서도 거침이 없고, 직선적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노래 가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이 ‘도약하는 한국’ ‘자신감 있는 신세대’ ‘미래를 선도하는 한국인’의 시대적 요청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공해주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대중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랩·댄스·록 음악의 서태지를 문화영웅으로 떠받들던 시대가 있었다. 박진영도 서태지의 영향 하에 성장한 세대이지만, 서태지와는 또 다른 계열의 R&B나 솔, 힙합 등으로 서서히 비중을 높여가면서 맞상대가 돼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잠재해있는 작곡의 힘은 강력한 무기다. 한국문화의 약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작곡하는 힘,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힘의 부족임을 생각할 때 그가 돋보인다. 한국 사람은 연주는 잘하는데 작곡은 잘하지 못한다. 이러한 사정은 대중음악뿐 아니라 클래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한국을 대표할 국민음악가가 없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그저 세계적인 연주자들만 잔뜩 있다.
박진영은 한때 연세대 철학과 출신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중퇴했다. 그런데 왜 그에게 철학과 출신이라는 소문이 났을까. 아마도 그가 방송 등에서 쏟아내는 철학적 질문이라든가, 삶의 방식에서 딴따라답지 않은 철학적인 풍모를 내비쳤기 때문일 것이다. 박진영은 모 방송국 프로인 힐링 캠프에 나와서 매우 철학적인 질문과 대답을 했다. “돈을 추구해서 돈을 벌었고, 명예를 추구해서 명예를 가졌고, 선행을 했는데 이것들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이 세상을 만든 누군가를 꼭 만나야겠다. 그래서 부족한 1%를 채워야겠다. 아직도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는 공부 중이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돈이 아닌, 인기가 아닌 ‘지혜’가 목표입니다. 돈과 인기는 바람과 같이 있다가도 없어지지만 지혜는 평생 우리들을 지켜줍니다. 성공한 연예인보다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커줬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면 대중음악가로서 이보다 철학적인 생각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는 또 최근 ‘놀 만큼 놀아봤어’라는 뮤직비디오도 철학적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뭘 원하세요.” “진리죠.” “누가 날 만들었는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어차피 죽으면 끝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살아요.” 박진영은 인간만이 ‘사용설명서’가 없어서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용설명서가 바로 실존철학자들이 말하는 ‘본질규정’이다. 그는 가요로서 철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철학의 중심도 ‘지혜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지혜’로 둔갑하고 있다. 그가 만약 사랑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시철(詩哲)에 버금가는 ‘노래로 철학하는 가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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