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15일 스승의 날이 지나고 나면, 교사들의 심경은 더 복잡해진다. 명예퇴직이 주된 화제가 될 정도로 동료 교사들이 대거 교단을 떠나고 있기 때문인데, 공무원 연금개혁에 따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보다는 교권 추락으로 인한 사명감 상실이 더 큰 이유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흔들리는 교단의 실태를 점검하고,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1. A교사는 올 초 학부모로부터 휴대전화 메시지로 지속적인 욕설과 협박을 당했다. 이 학부모는 "학부모가 복도에 서 있는데도 수업 중이라는 이유로 담임이 나와보지 않는 등 불친절하고, 아이가 장애학생이랑 같은 반이 되어서 불쾌하다"는 이유를 내세우면서 담임 교체를 요구했다. 심지어 A4 용지 3~4장 분량의 메시지를 매일같이 보내면서 고발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수업을 하는 A교사를 교실 밖 복도에서 몇 시간씩 지켜보기도 했다. 교무실에서 소란을 피우며 교장과 교감에게도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견디지 못한 A교사는 악몽과 불안 증세 등을 호소하며 학교에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2.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B교사는 몇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병이 생길 것 같다. 급우들끼리 가벼운 몸싸움을 한 것을 가지고 한 학부모가 교사의 징계와 교장의 사과 등을 요구하면서 교육청·교육부 등에 투서를 일삼았기 때문. 교육청 조사 결과 B교사의 학급 관리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B교사 “이번 일로 교사 생활을 계속해나갈지 자신감을 상실했다”고 토로했다.
#3. 교직 경력 3년차인 서울의 한 중학교 C교사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권을 침해하는 일부 학부모들 때문에 현장 교사들이 힘이 빠질 때가 잦다고 했다.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갈등을 해결하고 화해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 애가 당했으니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생각에서 학부모가 먼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는 것이다. C교사는 "가정에서 교사의 역할을 부정하면 아이들이 그대로 배워와서 학교에서 교사를 낮춰 보고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며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불신과 자녀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교권 추락의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집계하는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2009년 총 1570건에서 2012년 7971건으로 3년 사이 5.1배로 불어났다. 이후 2013년 5562건, 작년엔 4009건으로 주춤했다. 지난 2013년 이후 다소 감소한 것은 정부가 2012년 교권 침해에 엄정히 대처하는 내용을 담아 교권보호종합대책을 내놓았기 때문. 이는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2009년 11건에서 2012년 128건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시·도교육청에 접수된 사건만 접수하므로 실제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경남 창원에서는 2013년 3월 새 학기 첫날에 학부모가 아들의 담임교사를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학부모는 아들이 다니는 사립 고교에 찾아가 교사를 무릎 꿇리고 폭력을 휘둘렀다. 교사가 지도 과정에서 아들을 때렸다는 게 이유였다. 재판에 넘겨진 학부모는 자신이 폭행한 담임교사로부터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까지 받아 법원에 제출했지만, 사안이 엄중하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교권 침해의 대표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사건이다. 이처럼 교육 일선에서 교사의 권위가 갈수록 떨어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저출산의 여파로 핵가족화가 더욱 가속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자녀에 대한 애정 과잉이 교사의 정당한 교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 사회 변화에 따라 학생들의 인권의식이 지나치게 높아져 교권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보수성향 교육단체들을 중심으로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폭행·폭언으로 교사의 학생지도권이 무너지는 현상이 일부 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교원과 학생 간 갈등이 확산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인권 향상과 교권 추락을 인과관계로 연결 짓는 것은 근거 없는 오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진보 성향 교육감과 교육단체들도 교권 추락의 해법을 교육여건 개선이나 학교폭력 예방 등 근본적인 원인에서 찾아야지 학생의 인권의식 향상과 연결 짓는 것은 비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시켜 볼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인권 감수성을 함께 높여가야 한다는 점에서 동반적 가치로 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초·중·고 교사들의 명예퇴직 신청이 봇물 터지듯 급증해 이른바 '명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의 교원 명예퇴직 신청자는 2011년 4476명에서 2014년 1만3376명으로 3년 사이에 199% 늘었다. 특히 올해 2월 말 기준 명예퇴직 신청자 수는 1만2537명으로 작년 2월 말 5164명에서 143% 급증했다. 교원 명퇴 신청자는 2012년 5447명, 2013년 5946명으로 소폭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1만3376명으로 큰 폭으로 뛰었다.
대다수 교사가 명퇴 신청서에 사유를 '건강 등 개인 사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상은 달라 보인다. 교직의 위상이 낮아지고 교권이 추락하면서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사명감이 상실된 것이 이들이 교단을 떠나는 근본 원인이다.
"학부모들이 사사건건 참견하는 통에 좀처럼 마음대로 가르칠 수 없어요. 학생들도 예전처럼 지시를 따르지 않아 매우 힘듭니다. 이제 교사직에 대한 환멸감마저 드네요." 이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 한 교사의 푸념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폭언·폭력 등 교권침해 사례가 빈발하는 것과 함께 교사들의 의욕을 꺾는 한 요인은 과중한 '잡무'다. 현장 교사들은 잡무가 많아 수업과 생활지도 연구에 쏟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토로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명퇴 붐’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명퇴를 신청하는 교사가 급증하면서 '명퇴 관문'을 통과하는데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등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각 시·도 교육청들이 신청 인원을 모두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 작년에는 전국의 신청자 1만3376명 중 41%인 5533명만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복지 관련 예산수요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중앙정부의 교부금 등 세입은 줄어, 명퇴 교원을 위한 시·도교육청의 재원 확보에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사기가 떨어진 교사의 어깨를 펴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사의 위상을 높이겠다면서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교육계의 평가다. 교사에 대한 정신적·물질적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교편을 잡기 어렵게 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찾고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교육계에서는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교사는 임용고시 등의 전문적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문가다. 그러나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교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기에는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의견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소외감과 불만이 깔렸다. 교육부와 교육청 등의 교육 당국의 기준에 맞추다 보니 교실에서 수동적으로 가르치고 보람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행정업무 등 각종 잡무도 교사가 전문성을 느끼거나 기르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교육 정책이 추진될 때 현장을 잘 아는 교사의 역할도 제한적이다. 교육부가 작년 말 구성한 수능개선위원회에 현직 교사가 한 명밖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놓는 입시위주의 교육은 교사의 힘을 빼놓는 커다란 장벽이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입시 공부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기 어렵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만큼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학원에서 밤늦게 공부하고 학교에서 조는 학생을 교사가 무턱대고 나무랄 수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 국어·영어·수학 중심의 교육을 하다 보니 교사들이 학생들과 교감하며 인성 교육을 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교사의 사기를 높이는 방안으로 존경받는 ‘스승 상(像)’ 정립도 제시된다. 교사들이 사회공헌 등의 활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도록 하자는 것이다. '친일행적 논란'으로 의미가 크게 퇴색했지만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 사업을 벌이는 것도 비슷한 취지로 해석된다.

더불어 교사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필요하다. 예컨대 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오지학교에서 근무하거나 담임교사를 맡을 경우 수당 등으로 특별히 예우한다면, 교사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고교생들은 잘 가르치는 교사보다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을 더 좋아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 입시업체는 최근 고교생 5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에 대한 질문에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교사'라는 응답이 47%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은 26%, 유머러스한 선생님은 11%였으며, 외모가 좋은 교사는 11%, 상담과 생활지도를 잘해주는 교사는 8%로 나타났다. 싫어하는 선생님으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교사'가 39%로 가장 많았다. 이어 ▲편애하는 교사(25%) ▲잘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18%) ▲화를 잘 내는 교사(12%) ▲용모가 단정하지 않은 교사(6%)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에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79% 학생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선생님을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것이 성적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74%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친구들과 있을 때 선생님에 대한 호칭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친근하게 OOO쌤'이라는 대답이 62%로 가장 많았고, '정중하게 OOO선생님'이라는 답한 비율은 13%로 두번째로 많았다. 응답자의 81%는 스승의 날이 '의미가 있다'고 답했으며, 38%는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 뵙고 싶어진다'고 답했다. 학교 혹은 학원에서 선생님에게 체벌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47%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 2011년과 2013년 같은 설문조사에서 같은 응답은 각각 82%, 67%였다.
전문가들은 "많은 학생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이는 성적을 올리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선생님들은 학생 개개인의 학업뿐 아니라 인성·인생에 더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학생들도 평소에 표현하지 못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게 좋겠다"고 설명한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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