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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야당이 없다. 정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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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25 21:44:04 수정 : 2015-05-25 21: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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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선진화법·청문회법 위선의 극치
野 지금 할일은 사분오열된 집안단속
야당이 없다. 야당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높은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야당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정부 여당의 발목을 잡거나, 분수를 넘어서 ‘격한 야당’ 같지만 실은 준(準)여당 역할을 하려는 국회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야당이 야당 역할을 하려면 정부 여당과 적당한 거리에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감과 함께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에 제출된 법안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과 조정도 가능하고,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다수결에 승복하게 된다. 이것이 선진국의 국회 모습이다. 그런데 국회선진화법은 예외는 있지만 모든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얼른 보면 매우 ‘선진화된’ 법인 것 같지만 실은 여야 모두 제 분수를 모르고 제정한 ‘국회후진화법’이며, 두고두고 우리 국회나 정부를 늪에 빠뜨릴 법이다. 다수결의 원칙이 매번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원칙은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 법안 합의 처리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의 국회에서 제안됐다면 그래도 일말의 믿음이 갈지 모르지만, 합의는커녕 사사건건 당쟁을 일삼는 나라에서 참으로 기발하게 고안된, 자기기만과 자기함정에 빠진 법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당쟁을 본격적으로, 끝없이 하겠다는 것을 공언하고 보장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제 자신의 능력과 품격을 모르고, 하기 좋은 말로 ‘선진’을 앞세워 자신의 무능과 당파를 위장한 우리 시대 위선의 극치이다. 명분과는 달리 국회를 자신들의 당파적 혹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흥정하고 거래하는 난장판으로 만드는 법이 될까봐 걱정이다. 선진화법의 국회가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민생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절체절명의 법들이 여야 당쟁에 휘말리는 통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죽어나는 것은 국민과 관련 기업들이다. 오죽하면 통과되지 않는 법안을 두고 ‘불어 터진 국수’라거나 ‘법안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는 대통령의 자포자기성의 발언이 나오는가.

4·29 재·보궐선거의 결과를 보면 여러 악재와 불리한 입장에 있었던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국민들은 이미 야당이 법안처리를 막는 바람에 민생법안들이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문제가 있지만 책임의 비중을 야당에 더 물은 것이다.

야당 대표라는 사람이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자는 시대착오적인 말을 꺼냈다가 국민의 웃음을 산 적도 있다. 국회를 의원 장사판으로 만들자는 속셈인가. 도리어 국회의원 수를 줄여서 세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손바닥만 한 나라에 국회의원들은 왜 그리 많은지, 여기에 지방의회 의원들을 보태면 의원들은 넘쳐난다. 의원들이 넘쳐나면 날수록 나라는 시끄럽고, 부정부패에 휘말리고, 국민의 혈세는 낭비된다.

‘야당은 없다’를 부추기는 법안이 또한 국회청문회법이라는 것이다. 법안을 제정할 때는 정부 각료들의 자격과 청렴도를 검증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국회저주(詛呪)법’이 되고 말았다. 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면 무슨 흑주술(黑呪術)의 굿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분노와 질투뿐이다. 야당의 생각과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다고 국무총리나 각료들의 임명을 막는다면 정부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후보자의 미래 비전을 묻는 질문은 가물에 콩 나듯 하고, 모두 과거의 죄상을 추궁하고 폭로하기에 바쁘다. 우리 모두 범법자이고 죄인이라는 것을 공증하는 장소 같다. 역사를 과거로 돌리는 법안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머지않아 청문회를 없애라는 국민여론이 비등할지도 모른다.

국회의원들이 후보자들을 죄인 추궁하듯이 하는 살벌함과 무례함으로 인해 의원들이 마치 검사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청문회는 국회의원의 수준과 야만성을 목격하는 장소이다. 눈을 부라리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삿대질을 하는 모습에는 부정의 마인드밖에 없다. 청문회를 통해 만신창이가 된 가운데 총리가 되고 각료가 되어서 무슨 자신감과 용기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겠는가. 만약 거꾸로 청문회를 한다면 살아남을 국회의원들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의원 신분의 후보자들이 낙마하는 것을 보면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가 아닌가. 폭로의 특성은 그것의 끝없음에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긍정의 마인드와 감싸주기가 필요하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정부 여당의 안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각료 후보자는 무조건 흠집 내고 보는 대증적(對症的) 야당, 원한과 보복의 야당은 진정한 야당이라고 할 수 없다. 야당이 없으니 여당도 없고, 결국 한국정치는 실종되고 만다. 한국정치는 요즘 권력국회에 발목 잡혀 있다. IMF를 잊었던가. 여야의 싸움으로 제때에 법이 통과되지 않아 나라가 부도 난 측면이 많았다.

우리 속담에 “똥 뀐 놈이 성낸다”라는 말이 있다. 야당의 할 일은 정부 여당을 적절하게 견제하면서 차기 정권을 노리는 것인데, 아예 정부여당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책임을 야당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야당은 집권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야당의 지금 할 일은 사분오열되어 있는 집안을 잘 다스리면서 전열을 재정비할 때다. 제 집안의 분열상과 내홍을 감추기 위해 정부 여당에 필요 이상의 청문회 공세로 일관한다면 진정한 야당은 없을 것이다. 친노(親盧)와 비노(非盧)로 갈라진 야당은 집안부터 단속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과 청문회법은 명분과 달리, 위선적인 한국 정치문화의 하이라이트이며 결정판이다. 오늘날 국회는 한국정치의 블랙홀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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