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고) 빅토르 최를 아시나요. 1980년대 구 소련에서 최고의 로커로 이름을 날린 뮤지션이다. 러시아인들에게 지금고 기억되고 있는 빅토르 최는 아쉽게도 1990년 교통사고를 당해 28세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아내와 한 달간 휴가를 떠나면서 아들에게 밥값으로 100루블을 건넸다. 우리가 휴가를 떠나자마자 빅토르는 곧바로 상점으로 달려가 기타를 샀다. 그러고는 한 달 내내 굶었다.”
한인 3세 빅토르 최가 처음으로 기타를 산 경위에 대한 아버지 로베르트(한국명 최동렬)의 유명한 회고다. 말 그대로 한 달을 내리 굶지는 않았겠지만 그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빅토르 최(사진)는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1962년 6월 21일 카자흐공화국의 크질오르다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당국의 제지를 받으면서도 아마추어 록그룹을 조직했고 20세 때인 1982년 ’키노(영화)’라는 록그룹을 결성,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982년 첫 앨범인 ’45’, 1987년 ’그룹파 크로비(혈액형)’ 등을 발표했고 1987년에는 영화 ’이글라(바늘)’에도 출연해 인기를 넓혀갔다. 1988년 덴마크와 프랑스, 미국을 이어 1990년에는 일본도 방문했다. 앨범 ’포슬레드느이 게로이(마지막 영웅)’는 프랑스에서 녹음했다. 잦은 해외 공연을 통해 서방 문물을 접하면서 소련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열정을 끊임없이 나타냈다고 한다.
빅토르 최는 1990년 모스크바 공연을 시작으로 여름 내내 전국을 돌며 공연한 뒤 소련을 구성했던 발트해 연안국 라트비아의 리가로 옮겨 새로운 곡을 만들다가 교통사고로 2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에서 공연 초청을 받은 상태로 8월 15일 대형버스와 충돌한 것이다.
그의 사후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카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그리고 카자흐스탄의 알마아타에 그를 기리는 추모 벽이 생겼고 지금도 매년 8월 15일이면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다고 한다. 1993년에는 모스크바 콘서트홀 앞 ’스타 광장’에 소련의 영원한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다음으로 그의 이름이 헌액됐다.
생전 빅토르 최는 꽤 과묵했던 것 같다. 러시아의 한 언론인은 그의 탄생 50주년인 2012년 6월 21일 한 기사에서 “빅토르 최를 인터뷰하고 싶은가 하고 종종 자신에게 반문했지만 대답은 항상 ’아니다’였다. 빅토르는 드문 인터뷰에서도 항상 말수가 적었다. 그는 대답을 숙고했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아마 대화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보였다”면서 “아마 ’왜 그룹 이름을 키노로 지었느냐’는 식의 뻔한 질문만 하는 인터뷰이들이 부적절했을 수도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러시아에서 언론의 자유는 록과는 달리 1980년대 후반에야 꽃피기 시작했을 뿐 당시는 형성기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빅토르에게는 언론인들의 모든 질문이 우둔하고 부적절하며 재미없는 것이었을 수 있다”라면서 “그러나 사실 내가 보기에 인터뷰는 아예 그의 장르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빅토르는 살아생전 삶의 당면 문제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노래했다. 이제 그가 사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의 노래는 지금도 실재하고 있다”면서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빅토르의 추모 벽에는 현재도 적지않은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자체의 다층(多層) 성으로 인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히 살아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빅토르 최의 인기가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러시아 TV 방송사인 ’렌 TV’가 암으로 투병하는 빅토르 최의 아버지 로베르트를 위해 유명 연주인들이 참가하는 자선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시사주간 ’아르구멘트이 이 팍트이’(논거들과 사실들) 13일자 인터넷판이 전했다.
현재 77살인 로베르트는 지난 4월 암 선고를 받고 현재 텔아비브의 한 병원에서수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200만 루블(약 4420만원)이 필요하지만 현재 연금수령자인 로베르트의 가족으로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선 공연 참가자와 시간,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지만 아버지를 위한 자선공연 자체로 빅토르 최의 인기를 가늠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추영준 기자 yjch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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