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썸’이란 말은 요즘 청춘의 전형적인 사랑 방식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어로는 ‘썸씽(something)’의 준말로 남녀 간 서로 호감을 주고받는 상태라는 뜻인데요. 가수 정기고와 소유가 부른 ‘썸’이란 노래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 / 니 꺼인 듯 니 꺼 아닌 니 꺼 같은 나’. 즉, 연인인지 친구인지 알쏭달쏭한 상태가 바로 썸인데요. ‘썸’이란 단어에 담긴 다양한 의미에 대해 살펴 봤습니다.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잠들기 전 통화가 자연스럽다, 서로 일정을 꿰고 있다…우리는 '썸'을 타고 있는 것일까?”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너'라는 가사가 유행하고, 이 여자 혹은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인지 상담해주는 TV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연애가 시작하기 전에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뜻하는 썸.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그야말로 썸으로 넘쳐났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는 트위터 63만9440건과 블로그 11만4079건을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 분석자료를 보면 지난해 SNS에서 '썸 타다'라는 표현은 11만8961번 쓰였다. 2011년만 해도 1768번에 불과했지만 3년 만에 67배로 증가했다.
썸이라는 단어는 2009년부터 SNS에 아주 드물게 등장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점은 2013년. 당시 SNS 언급량은 3만6064건으로 집계됐다.

썸을 탈 때 꼭 필요한 게 있다. 바로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다. 지난 2011년부터 카카오톡은 썸과 가장 관련이 높은 키워드였다. 전화나 문자 아니면 소통할 수 없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상대방과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게 됐다.
'썸 타다'와 '카카오톡'이 함께 SNS에 등장한 횟수는 ▲2011년 30회 ▲2012년 239회 ▲2013년 606회 ▲2014년 1257회로 점차 늘어났다.
다음소프트 관계자는 "카카오톡이 새로운 감정전달 매체 역할을 하면서 과거에는 없던 감정소모와 여러 잔기술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밀당(밀고 당기기의 준말)'이 있다. 밀당이 썸과 함께 언급된 횟수는 ▲2011년 10회 ▲2012년 111회 ▲2013년154회 ▲2014년 777회로 많아졌다.
"어제 선톡 했다가 읽씹 당했잖아."
'선톡(먼저 카카오톡 보내기)', '읽씹(읽고 씹기·답장 안하기)'도 썸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지난해 두 단어의 언급량은 210%, 380%씩 증가했다.
썸과 거리가 먼 단어도 있다. 바로 '이별'. "썸 타다 헤어졌다"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하다. 썸을 탄다는 것은 사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별도 없는 것이기 때문.
실제 SNS에서 연애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이별'이 언급된 횟수는 작년 기준 3만9104회에 달한다. 하지만 '썸'과 '이별'이 함께 등장한 적은 508회뿐이다.
요즘에는 연인관계에서만 '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말 한마디에 판도가 바뀌는 아슬아슬한 정치판을 묘사할 때도 단골로 쓰인다.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썸 타는 소비자라는 뜻의 신조어 '썸슈머(SOME·sumer)'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이와 관련, 윤서한 티몬 커뮤니케이션실 대리는 “썸슈머는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는 상황이어도 유행에 민감해 가격 대비 성능 뛰어난 제품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둘러보는 소비자를 가리킨다”며 “마음껏 돈을 쓰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연애를 하고 싶은데 조심스러워 하는 '썸'을 닮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요즘 젊은이들은 유행처럼 ‘썸’을 타는 걸까. 대학생 김모(24)씨는 “썸 타는 것은 결국 ‘간’ 보는 것”이라면서 “사귀자고 말할 자신도 없고 연애 비용을 부담할 능력도 안 되니 썸을 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대생 최모(22)씨는 “이별로 상처받기 싫어서 썸이라는 단계를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썸’ 타기에는 젊은 세대의 자기방어 심리가 깔려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인터넷 세대들은 깊게 1명을 만나기보다 여러 명을 얕게 만나는 데 익숙해 연애와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
한 심리학 전문가는 “정식 교제를 미루고 ‘썸’을 즐기는 데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이별이나 상처로 피해 보지 않으려는 자기방어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확실한 연애에 대한 두려움을 ‘연애가 깨졌다’보다는 얕은 단계인 ‘썸 타다 엎어졌다’ 같은 가벼운 표현으로 해소하려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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