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북한 평양에서 지난 12일 개최된 국제마라톤대회 참가기를 실었다.
NYT의 스포츠 담당 기자인 주레 롱맨(60)은 16일(현지시간) 이 대회의 하프 마라톤 코스를 직접뛴 후 에세이 형식으로 대회 과정을 기술했다.
롱맨은 “세계에서 가장 페쇄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북한이 잠시 나마 열린다는 점에서 평양 마라톤을 기다렸다”면서 “마라톤 코스를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1∼2시간 경호원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올해 평양 국제마라톤대회에는 작년보다 늘어난 30개국 650명의 외국인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했다. 미국인은 100여 명으로 알려졌다.
롱맨은 대회일인 12일 오전 8시 30분 북한 김일성경기장의 5만 좌석은 거의 꽉 찼으며 예행 연습에 따른 것일지라도 열광적인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북한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들과 잠깐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몇몇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지만 어떤 선수들은 낯을 가리는 듯 눈길을 돌렸다고 전했다.
외국인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고 1시간 뒤 북한 선수들이 출발했다.
북한 선수 중에는 마라톤복에 런닝화 차림도 있었으며 일부 여성 선수는 허리에 흰 띠를 묶고 달렸다.
공식 참가자는 최대 800명이었지만 번호표를 붙이지 않고 뛰는 ’비공식’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롱맨은 “북한 가이드가 우리의 복장을 하나하나 세밀히 살폈다. 미국, 한국, 일본의 국기가 그려진 것은 금지됐고 제조사의 로고가 두드러져서도 안됐다”면서 “작년에 한 참가자는 이를 위반해 청바지를 입고 뛰었던 것으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구간인 도로변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도 적었고 한 군인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고 전했다.
어린이들은 더 대담해 선수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는가 하면 영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환영합니다”“이름이 뭔가요”“몇 살인가요”라고 큰 목소리로 묻기도 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한 선수는 젊은 여성이 손에 키스한 뒤 이를 자신 쪽으로 불어 키스를 보내는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같은 ’손키스’로 화답했다고 말했다.
미국 맨해튼 출신의 한 선수는 교통정리를 하던 근엄한 여성 앞을 지나갈 때 가슴을 진정시켰다면서 “나에게 윙크한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롱맨에 따르면 여느 대회에서 볼 수 있는 이동 화장실은 평양 마라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표지판은 도로에서 가까운 화장실로 선수들을 안내했다.
그러나 어떤 화장실은 건물 2층에 있었고 식품점·식당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 촬영은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었지만 엄격한 규정은 아닌 듯 했다. 카메라를 빼앗는 사람도,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없었다.
롱맨은 결승점이 가까운 21km 지점을 지나자 앞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장으로 들어섰을 때 청중은 환호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추영준 기자 yjch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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