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플린은 야욕의 독재자 힌켈과 박해받는 유태인 이발사 찰리 두 인물로 나온다. 실제 히틀러와 흡사한 제스처, 그의 액센트와 억양에서 착안해 만든 독일어와 영어가 혼재된 대사는 객석에 독특한 언어로 전달되면서 유성영화 시대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배우 채플린의 위용을 보여준다. 순박한 이발사 찰리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에 맞춰 손님 머리를 깎고 면도하는 장면은 관객을 포복절도케 한다. 익살스러운 동작과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제1막 전주곡이 흐르는 가운데, 힌켈이 리듬체조를 하듯 지구본 풍선을 가지고 노는 대목은 왜 찰리 채플린을 ‘20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 아티스트’라고 부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왼팔에서 오른팔로, 발로 이리저리 다루다가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엉덩이로 내려오는 지구본 풍선을 받아쳐 올리는 모습은 압권이다. ‘독재를 풍자하는 최고의 명장면’으로 영화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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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은 독일 나치를 노골적으로 희화화한, 영화사상 최고의 정치 풍자극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 민주주의와 자유, 인간애를 말한다. |
관객은 마침내 마지막 전율의 5분과 만나게 된다. 얼굴이 닮은 독재자 힌켈과 바뀐 이발사 찰리의 연설 장면이다. 그가 속사포처럼 부르짖는 외침은 이 영화의 주제를 담아낸다. 제작 당시보다 과학기술과 기계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본주의의 고민이자 우리 자화상이기도 하다.
중절모, 콧수염, 지팡이, 펑펑한 바지, 큰 구두. 그리고 슬랩스틱 코미디, 풍자와 해학, 인류애, 웃음과 눈물의 페이소스, 순수와 비련의 드라마…. 우리 주변의 모두가 찰리 채플린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경우는 드물다. “연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이란 그의 말대로 가슴으로 찍은 영화는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그의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어두운 시사회장에서 열심히 받아적은 연설 장면의 일부를 소개한다. 대표나 단체장이라면 인용해 볼 만하다.
“…우리 인생은 충분히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방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이 세상을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고, 우리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을 이뤘지만 우리 자신은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기계문명은 우리에게 결핍을 가져다 주었고, 지식은 우리를 냉담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가슴으론 느끼는 게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기계보다 인류애가 더욱 절실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 기계를 창조한 능력을 지닌 당신들은 행복을 창조해 낼 능력 또한 지녔습니다. 여러분들은 삶을 자유롭고, 아름답고, 진귀한 모험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 모두에게 일할 기회를,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노인들에게는 안정을 보장하는 훌륭한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극악무도한 자들은 이것들을 약속하며 권력을 키웠지만, 그들의 약속은 실행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함께 싸웁시다. 세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국경을 없애기 위해, 탐욕과 증오와 배척을 버리도록 함께 투쟁합시다. 이성이 살아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웁시다. 과학의 발전이 전 인류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세계를 만듭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모두 하나로 단결합시다!” ‘위대한 독재자’는 16일부터 스크린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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