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 있는 비오토피아 타운하우스 정원 안에 있는 물·바람·돌·두손 미술관과 근처의 방주교회, 그리고 본태 박물관을 먼저 보았다. 본태 박물관은 일본인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재일동포 건축인 이타미 준의 작품이었다. 승효상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집 모양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는 추사거적지를 보고 동쪽으로 차를 달렸다. 휘닉스 아일랜드의 아고라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고라는 현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는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의 설계로 지어진 클럽하우스이다. 휘닉스 아일랜드에는 안도 다다오의 또 다른 작품인 글라스 하우스와 지니어스 로사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오토피아에서도 그랬지만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지며 의외의 공간체험을 만들어낸 한 사람의 건축사와 위대한 건축물이 가지는 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파리에 가면 에펠탑과 퐁피두센터를 보고, 뉴욕에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을 구경하며, 이집트에 가면 피라미드를 찾는다. 스페인의 성가족 성당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등은 매년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시드니는 오페라하우스로 매년 관광수입이 4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건축은 국가의 격을 높이고 다른 산업과 문화적 창조성을 접목해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최적의 문화자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건축문화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1위에 머무르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전 세계 12위라는 국가 위상에 비해 건축설계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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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건축사 |
다행스럽게도 건축문화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정부, 건축계, 학계 차원에서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및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에 따른 건축 전문자격의 시장개방과 국제기준인 국제건축사연맹(UIA) 권고기준에 맞는 자격제도를 갖추기 위해 대학의 건축학과가 5년제로 변경돼 시행 중이다. 2012년에는 국제 수준의 건축사자격제도 운영 전문기관인 건축사등록원이 설립됐다. 이로써 국가 간 건축사 자격 상호인정을 위한 기틀이 세워졌고, 장차 세계시장을 누빌 건축사 경쟁력 확보를 담보할 제도체계 완성을 이루게 됐다.
건설 경기의 위축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건축 설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드라마와 음악의 한류처럼 우리의 건축문화가 세계를 누빌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김영수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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