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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 비리로 구속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방산 자료를 숨겨뒀던 서울 도봉구의 한 컨테이너 야적장. |
밀실은 비리의 당사자가 자신을 옥죄어 오는 수사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조성한 공간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수사진을 잠시나마 애먹일 수 있었겠지만 들통나는 순간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은 물론, 그토록 감추려 했던 비밀들을 일거에 수사진에 '헌납'한다는 점에서 자충수로 결론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일광공영 이 회장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검찰은 지난 14일 1천억원대의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 납품 사기 혐의로 이 회장을 구속한 이후 수사를 마음껏 진척시키지 못했다.
빼돌려진 돈의 흐름을 추적하면서 이 회장의 비리 커넥션, 즉 군과 방위사업청 고위 인사들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확대돼야 할 수사가 추가적인 물증을 찾지 못해 벽에 부딪혔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읽은 듯, 이 회장은 구속 상태임에도 진술을 거부하는 등 검찰 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태도에는 은밀한 사업 자료를 이미 빼돌려 놨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건물 안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 책장 뒤편에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밀실'을 운영했다.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서울 도봉산 인근 컨테이너 야적장의 1.5t 컨테이너에 10여년치의 사업 자료를 숨겨놨다.
이 회장과 일광공영은 작년 11월 군과 검찰이 합동수사단을 꾸려 방위사업 비리 수사에 착수할 때를 전후해 밀실과 컨테이너를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검찰이 이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김모씨 등 2명을 추궁한 끝에 비밀 공간의 위치를 적발함으로써 이 회장을 둘러싼 비리 수사는 오히려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이 회장의 증거인멸 행각은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을 준다. 9년 전 이맘때 검찰이 총력을 기울여 수사하던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의 묘한 기시감(旣視感) 때문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06년 3월 서울 양재동의 현대기아차 본사 및 계열사 압수수색 당시에도 정몽구 회장이 조성을 지시 내지 묵인한 것으로 보이는 비밀공간이 발견됐다. 본사가 아닌 물류계열사 글로비스에서였다.
당시 밀실 구조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현대차 측은 글로비스 건물 9층 사장실과 재경팀 사이의 벽 속에서 금고가 발견됐고, 그 안에서 현금 뭉치와 양도성 예금 증서 등 80억원대의 비자금과 각종 기밀서류가 줄줄이 나왔던 것이다.
기막힌 수법으로 비리 단서를 숨겨놓았다는 점, 결과적으로 물증을 통째로 내줘 수사받는 입장에선 화근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이 회장의 비밀공간과 닮았다.
다만 현대차 사건에서는 거액의 뭉칫돈이 나왔고 공간 조성에 계열사 건물을 활용했다는 점 등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비밀공간의 '용도'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무리한 선박 운영으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과 함께 수백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던 유병언(사망) 전 세모그룹 회장의 밀실이 해당된다.
작년 5월 수사당국의 압수수색으로 발견된 유 회장의 비밀공간은 전남 순천의 별장 속에 마련돼 있었다.
당시 수사진이 별장 거실의 벽면에 통나무로 위장된 판을 치우자 10㎡ 정도의 밀실이 드러났다. 입구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만들어진 이 공간은 신병 검거를 회피하기 위한 은신처 용도로 사용됐다.
유 회장은 이 공간에 숨어 검거망을 회피했지만 작년 7월 별장 인근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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