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설왕설래] 웰다잉 시대

관련이슈 설왕설래

입력 : 2015-03-24 21:06:18 수정 : 2015-03-24 23:46:59

인쇄 메일 url 공유 - +

프랑스 시인이자 화가인 마리 로랑생은 장미꽃과 함께 ‘영원의 여행’을 떠났다. 일흔을 넘긴 어느 날 죽음의 전령이 찾아왔다. 그녀는 전령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용히 유언을 남긴다. “하얀 드레스를 입혀 주세요. 그리고 빨간 장미와 나의 연인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가슴에 올려주세요.”

마리 로랑생은 생전에 ‘죽은 여인보다 더 가여운 여인은 잊힌 여인’이라고 노래했다. 유언은 결코 ‘잊힌 여인’만은 되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이었다. 그녀의 영혼은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에게로 아득한 길을 떠났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프랑스 화가처럼 그림 같은 죽음을 맞는 이는 드물다. 죽음에 대한 아무 준비가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들뜬 기분으로 밤새 준비물을 챙긴다. 그래야 불편이 줄고 여행의 즐거움이 커진다. 그런 우리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여행에는 무관심, 무계획으로 일관한다. 여행을 거부하고 회피한다. 즐거운 여행이 될 턱이 없다.

요즘 이웃 일본에서는 죽음을 밝고 즐겁게 받아들이자는 자각 운동이 인다고 한다.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엔딩 노트’도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질병으로 판단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희망사항을 적어두자는 것이다. 죽음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입관체험 행사도 곳곳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제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는 호스피스국민본부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호스피스 정착을 통해 사람들에게 품위 있는 말년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다. 수명은 늘고 있지만 아픈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여생을 보내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죽음의 질’은 세계 하위권을 맴돈다.

100세 시대,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는 웰빙(well-being)이 아니다. 웰다잉(well-dying)이다. 젊어서 풍족한 삶, 보람 있는 삶도 중요하지만 나이 들어 비참한 말년을 보낸다면 무슨 소용인가.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죽음 없이는 알찬 삶은 불가능하다. 웰빙을 위해서도 웰다잉은 필요하다. 품위 있는 죽음! 마지막 인생길에 장미꽃 한 송이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배연국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있지 유나 '반가운 손인사'
  • 에스파 카리나 '민낮도 아름다워'
  • 한소희 '완벽한 비율'
  • 최예나 '눈부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