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시대정신 전체, 곧 오류와 무지와 천박함과 무기력과 이것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불확실한 조치였다.”
프랑스 나폴레옹군이 독일을 점령하던 1807년에 피히테가 베를린의 학술원에서 행한 연속 강연 ‘독일 국민에게 고함’의 한 구절이다. 이듬해 책으로 출판된 이 강연에서 그는 독일 국민의 역사적 사명과 민족 부흥의 길을 제시하면서 ‘도덕적 개혁’을 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당시에 나폴레옹을 보고 ‘세계정신’이라고 칭송한 헤겔은 청년시절에 쓴 논문에서 “주목할 만한 커다란 혁명이 발생하려면 그에 앞서 조용하고 은밀한 혁명이 시대정신 속에서 발생해야 한다”고 했다. 헤겔은 정신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발전하며, 시대정신으로서 국가에 존재한다고 여겼다. 개개의 인간정신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가 역사 속에 자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취하는 형태가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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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 논설위원 |
19세기 말 이후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개화, 자주독립국가 건설, 산업화, 민주화 등으로 이어졌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우리 역사에서 드러나는 지식인들의 시대정신 탐구를 높이 평가한다. “비록 시대적 구속에 갇혀 있었더라도 그 구속을 넘어서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꿈꿨으며,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은 시대정신을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에게 시대정신이 있는가. 사회구성원 다수가 공유하는 시대정신이 없으면 나아갈 방향을 잃기 쉬운 법이다. 피히테가 말한 ‘오류와 무지와 천박함과 무기력’이 우리의 시대정신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눈이 밝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들은 게 적어서인지 몰라도 딱히 시대정신이라고 꼽을 만한 것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지식인들의 저술이나 주요 정당들의 정강에선 시대정신의 빈곤이 느껴진다. 시대정신이란 말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잘 쓰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디에서 찾겠는가. 시대정신이 뚜렷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제도나 관행이 그대로 남아 사회 발전 노력의 발목을 잡는다.
어쩌면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사회개혁이야말로 시대정신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정책은 지난한 과제이고 일정도 촉박하다. 하지만 여기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동력을 확보해 사회 각 분야로 개혁을 확산하고 사회의 투명성을 높여나가면 시대정신으로 승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시대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의 역사적 현실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고, 시대정신이 제대로 보일 것이다. 나아가 스스로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한 엄중한 각오와 결단을 하고, 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국민이 숭고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게 정치 지도자다.
꿈을 혼자서 꾸면 꿈으로 남게 마련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시대정신이야말로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일 것이다. 과연 지금 이곳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우리 모두가 되돌아봐야 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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