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한지 콜라주와 전통채색 작업으로 나름의 입지를 굳힌 정종미(58·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 작가가 깨달은 ‘한지의 DNA’다. 1994년 미국 뉴욕에 머물 때 그는 종이공방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종이를 접하면서 비로소 한지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게 됐다. 4월 12일까지 고려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 4―여성을 위한 진혼곡’은 ‘한지 여인’을 갈무리해 볼 기회다.
전통채색과 한지부조를 조화시킨 작품 ‘She’. |
“종이 재료를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려불화 등 고화기법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자연채색은 사람을 굉장히 편안하게 해준다. 은근하게 품어준다는 점에서 한지와 비슷하다. 화학적 인공발색은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다. 자연색을 도자기에 견주한다면 인공색은 플라스틱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자연적인 전통채색과 한지에서 힐링이 됐다고 말한다. 명성황후, 허난설헌, 논개부터 어머니까지 한국 여인의 한풀이에 한지부조와 전통채색을 동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론 내가 무당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천연채색 오방색 한지로 살풀이춤을 추는 여인이다.”
그는 여인들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진혼곡을 쓰기 위해 천과 씨름하며 바느질도 하고, 염색을 반복하는 작업 과정도 감내하고 있다. 대구의 의사 집 딸로 태어나 서울대 미대를 나왔고, 변호사 남편을 둔 그가 ‘여성의 한’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아버지가 참 많은 여인을 사랑하셨다. 모든 걸 인내하신 어머니는 내게 성모이자 부처였다.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아 우리 집에 머물며 나를 돌보던 위안부 할머니도 계셨다. 결혼 후 극심한 고부 갈등을 겪으며 이 같은 여인네들의 한을 불러내기 시각한 것이 내 작업의 시작이다.” 사실상 그의 한지 채색작업이 치유의 굿판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02)3290-1514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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