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선거로 투명성 확보 계기됐으나…"제도개선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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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
농·수·축협조합장 선거가 이번처럼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진 일은 처음이다. 동시선거 방식은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 공직선거처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일괄 관리해 부정선거를 방지하고 선거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개별적으로 치렀던 조합장 선거방식보다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동시선거 방식에 따른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3당2락’(3억원을 뿌리면 당선되고 2억원만 쓰면 낙선한다) 혹은 ‘4당3락’과 같은 과거 ‘돈 선거’가 아직도 남아있어 돈 봉투를 건네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여전하다. 앞으로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에 부정선거를 방지하고 선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선관위가 일괄 관리하는 동시선거 방식을 처음 도입했지만 금품과 식사제공 등 부정선거운동과 무자격 조합원을 둘러싼 논란 등 혼탁양상이 적잖이 빚어졌다.
이번 동시조합장 선거는 3509명이 등록해 평균 2.6대의 1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초 접수후보는 3523명이었으나 14명이 사퇴했다. 이중 농·축협 153곳과 산림조합 36곳, 수협 15곳은 조합장 후보가 단독 출마해 무투표로 당선자가 사실상 결정됐다.
투표가 종료되면 지역선관위로 투표함을 이송해 개표가 진행됨에 따라 오후 8시경 당선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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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위반행위 사례예시집.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
실제로 중앙선관위는 기부행위가 제한된 지난해 9월2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돈·흑색선전·허위사실공표 등 위반사항 746건을 찾아내 147건을 고발하고 39건을 수사의뢰, 35건은 이첩, 525건에 대해서는 경고조치를 각각 취했다.
이번 선거대상 조합은 농·축협의 경우 1115곳, 수협 82곳, 산림조합 129곳 등 1326곳이며 선거권자는 280만명가량 된다.
조합 한 곳당 적발건수는 0.562건으로 최근 4년간 개별 조합장 선거 때 위반수준과 동일했으며, 선거 후 추가신고가 접수되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특히 전체 위반 가운데 39%인 291건, 고발 중 66%인 97건이 기부행위 등 돈과 관련된 사안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깜깜이 선거’나 ‘돈 선거’ 등 선거 과정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동시선거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부정행위 단속에 나섰다”면서 “단속의 성과로 적발 건수가 늘어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고포상금 상한을 기존 1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올린 후 총 2건의 1억원 수령대상이 나오는 등 신고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돈 선거 관련자 등 선거사범에 대해선 끝까지 추적·조사해 당선무효 등 엄중 조치할 방침이다.
관례적으로 돈을 주고받는 데 크게 문제를 삼지 않던 개별 조합장 선거 당시의 막걸리 선거문화가 그대로이다 보니 유권자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노골적인 불법행위가 적지 않았다. 또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돈 선거에 무감각해진 점도 혼탁선거 조장에 한 몫을 거들었다.
후보자들은 후보자대로 유권자가 먼저 금품·향응을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해 전반적인 인식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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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계일보 DB |
게다가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예전 조합별 선거 때조차 보장됐던 토론회나 합동연설회 등이 모두 금지돼 후보자 혼자 일일이 조합원들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고 현 조합장의 ‘현역 프리미엄’을 뛰어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문제가 대두했다.
조합장 선거에 나선 한 후보자는 “후보자 본인을 알릴 기회가 없고 선거운동 방법이 막막하다 보니 결국 혈연과 지연, 돈에 의존하게 된다”고 불평했고, 다른 후보자는 “도시지역의 경우 인구 50만명이 넘는 지역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합원 1000여명을 일일이 방문하기도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직조합장은 후보자등록 후 조합의 선임이사가 조합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하는 현직 프리미엄에 대한 일부 제약이 있기는 했으나,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0일까지인 약 2주 동안의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24일과 25일 이틀간 후보등록을 받았다.
후보등록 마감시한인 지난달 25일 오후 6시까지 후보등록절차를 마치기만 하면 그 다음날부터는 선거운동기간이 바로 이어져 실질적으로는 현직조합장에 대한 직무정지는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나온 지적 사항을 놓고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3분기까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합당 조합원은 평균 2200명 정도로 조합장은 이들을 이끌며 한해 90억~100억원 안팎의 예산을 집행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조합장은 이처럼 상당한 예산 재량권과 함께 1억원 상당의 고액 연봉을 받는 지방권력이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에서는 조합장이 지방유지로 행세할 수 있다.
그러나 횡령 등으로 징역형을 받은 조합장이 약 5년이 경과한 뒤에는 선거에 다시 나설 수 있고 후보자 전과기록 공개의무가 없는 점도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꼽힌다.
이 밖에 조합원 자격이 없는 이른바 ‘짝퉁 선거인’ 문제로 선거가 끝난 후 낙선자 측에서 무더기로 당선무효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다.
조합장선거 투표소는 선거를 실시하는 읍·면마다 1개소씩, 동(洞)지역은 관할 선관위가 해당 조합과 협의해 일부 동에만 각각 설치했다. 투표소 약도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 진행·마감 등과 개표 전 과정을 선관위 인터넷방송을 통해 공개한다.
선거인은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운전면허증, 그 밖에 관공서 또는 공공기관이 발행한 사진이 첨부된 신분증을 제시하면 해당 구·시·군의 어느 투표소든 투표할 수 있다. 또 법인 선거인은 사업자등록증이나 사업자등록증명원, 대표자(피위임자) 신분증명서 등을 제시하면 된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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