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 대책 없다”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흔히 이들을 가리켜 '3포세대'라 일컫는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내집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고 하여 '5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는 삶의 기본적인 과정들을 하나 둘씩 포기할 만큼 청년세대들의 모습이 위태롭다는 반증이다. 유래없는 고스펙을 지닌 청년세대들의 위기에는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함께 담겨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누구도 쉽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포세대'를 바라오는 사회의 시선, 그리고 당사자들의 속내를 살펴본다.
11일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5포세대'(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인간관계 포기한 청년세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10명 중 6명이 현재의 20대와 30대가 ‘5포세대’로 표현되는 것에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소 극단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는 ‘5포세대’라는 표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2030세대들이 겪고 있는 불안한 현실에 공감하는 사회적 시선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 당사자인 젊은 층의 공감대가 가장 높았다.
사회적인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 최근 청년세대들이 가장 많이 포기한다고 느끼는 대상은 출산과 결혼, 내집마련 순이었다. 아무래도 여성은 출산 포기, 남성은 내 집 마련 포기를 인지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인간관계와 연애의 포기를 거론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 2030세대 36% "나는 5포세대에 속한다"
20대와 30대 청년세대만을 대상(500명)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청년세대의 36%가 자신 스스로를 5포세대에 속한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세대 중에서도 20대 여성이 자신을 5포세대라고 생각하는 비중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20대 남성과 30대 남성, 30대 여성 순이었다.

자신이 5포세대에 속한다고 평가한 청년세대들은 현재 포기하고 있는 대상으로 내 집 마련과 결혼을 가장 많이 꼽았다. 특히 내 집 마련은 30대 남성이 가장 많이 포기하고 있는 꿈이었으며, 결혼은 응답자별 특성 없이 공통적으로 많이 포기하는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출산과 연애를 포기하고 있다는 응답도 절반에 달했으며,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있다는 응답자도 상당수였다. 사회 전체의 시선에서는 청년세대들이 연애와 인간관계까지 포기하고 있다는 인식이 적었던 것과는 달리, 상당수 5포세대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던 그 부분들마저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 문제는 결국 '일자리'
최근 청년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 ▲내집마련 ▲인간관계와 같은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결국 ‘일자리’가 중요한 문제였다. 사회구조의 문제 다음으로 고용구조의 불안과 취업의 어려움을 5포세대의 원인으로 꼽는 의견이 많아, 고용불안과 취업난 등 ‘일자리 문제’가 시급하다는 인식이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대학졸업 후 빚을 떠안게 되는 구조와 내수 시장의 어려움, 스펙이 좋은 경쟁자가 너무 많은 현실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았다.
반면 50대 고연령층을 중심으로는 청년세대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청년세대가 너무 좋은 직업만 가지려 하며, 너무 편하게 성장을 해서, 의지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 5포세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 5포세대 문제 야기한 주체, 정부
5포세대 문제를 양산한 주체로는 국가(정부)를 꼽는 의견이 단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와 정부가 청년세대를 보듬을 수 있는 이렇다 할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큰 것으로, 특히 30대는 국가, 20대는 정부∙공공기관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대기업과 청년세대 자신을 문제의 주체로 꼽는 의견도 많았는데, 대기업에 대한 비판은 취업 당사자인 20대에서, 청년세대에 대한 비판은 50대에서 많이 나왔다. 다음으로 청년세대의 부모, 노년세대, 중소기업을 문제의 주체로 꼽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이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평가한 결과, 전체 85%가 향후 5포세대의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세대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현재의 인식에는 다소간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이런 문제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세대별 시각차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청년세대가 열심히 공부를 하면 지금보다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인식은 전체 4명 중 1명에 그쳤다. 또한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은 관계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의견과 비동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으며, 앞으로 열심히 일해도 경제적으로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도 절반에 가까웠다.
◆ 85% "향후 5포세대 문제 더 심각해질 것"
전체 10명 중 6명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국가와 사회, 그리고 제도를 원망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원망은 청년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서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에 비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해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보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우세해, 현실에 대한 불만이 대체로 부모 세대보다는 국가와 사회전체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불행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청년세대 문제를 청년세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전체 16.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나 당사자인 20대의 경우에는 이런 인식을 가진 응답자가 매우 적어, 청년세대들의 자신감 상실이 심각한 수준으로 보여진다. 전체 응답자의 87%는 취업난이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에 함께 공감하는 것으로도 조사됐다.
◆ 5포세대 안 되려면, 월 300만~400만원은 벌어야
청년세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돌파구로 여겨지는 것은 ‘정치참여’였다. 전체 10명 중 6명이 청년세대의 정치참여가 늘지 않으면 세상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많은 청년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라는 주문으로, 다행히 젊은 층 스스로의 자각이 매우 높다는 점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의 청년세대 문제는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해결될 것이라는 인식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보다 우세한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청년세대들이 기본적인 조건들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적정 월평균 소득은 월 300만~400만원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월 200만~300만원 ▲월 400만~500만원 ▲월 500만~600만원 순이었다. 반면 월 200만원 미만이 적정한 월 소득이라는 응답은 단 1.5%에 그쳐, 실제 고용현장과의 괴리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