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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 법률산책] 법은 곧 형평이요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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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03 21:29:09 수정 : 2015-02-03 21: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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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처럼 우리의 일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많지 않다. 민법, 형법은 말할 것도 없다. 통상임금 논란은 노동법, ‘13월의 세금폭탄’이라는 별명을 얻은 연말정산 사태는 세법의 문제다. 어찌 보면 먹고, 자고, 일하러 가고, 물 마시고, 숨 쉬는 것조차 법과 관계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법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동양에서는 법을 法이라 쓰고, 서양에서는 독일어로 Recht, 불어로 droit, 스페인어로 derecho, 이탈리아어로 diritto라고 한다. 이 서양 말은 동시에 권리를 뜻하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법은 law라 하고 권리는 right라 하여 구분한다.

한·중·일 3국이 공유하는 법이란 글자는 물 수(水)자 옆에 갈 거(去)자를 쓴 것으로 보아 법이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고문헌의 설명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한대(漢代) 이전에는 ‘법(灋)’이라 썼다. 후한(後漢)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법(灋)’은 형(刑)을 뜻한다. 형벌은 물이 평평한 것처럼 공평해야 한다는 뜻에서 삼수변(氵)을 취했다 한다. 그리고 치(廌)란 신화 속의 동물로 머리 가운데 뿔이 하나이고 몸은 소·말·사슴·산양·사자를 닮은 해태인데, 재판할 때 바르지 않은 자의 몸에 뿔을 닿게 해 범죄를 가려 부정(不正)을 쫓아냈다는(去) 뜻에서 치(廌)자와 거(去)자를 조합했다 한다. 이에 따르면 동양에서 법이란 본래 주술적, 종교적 성격을 띤 형사사법에 있어 공평과 정의를 뜻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서양 현대어에서 법을 뜻하는 말은 대체로 종교적, 윤리적 관점에서 ‘바르게 세운다, 놓는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양법의 기초를 다진 로마에서는 법을 jus라 했는데, 이는 종교 의식(儀式) 상 요구되는 순결함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fas라는 말도 쓰였는데 이것도 판결(fari)이 종교적으로 문제없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로마원수정 후기의 법률가 울피아누스는 법(jus)이란 말이 정의(justitia)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면서 ‘법은 선(善)과 형평의 기술’이라는 켈수스의 정의를 인용하고 있다.

로마의 법은 형법이 아니라 민법에 중점이 있었다는 점에서 동양의 법과는 차이가 난다. 하지만 로마의 법(jus)이나 동양의 ‘법(灋)’이나 종교적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형평과 정의가 그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서양에서 정의라는 말은 곧 정의의 여신을 뜻하기도 하는데, 형평을 상징하는 저울과 공정한 재판을 상징하는 눈가리개 그리고 법집행의 힘을 상징하는 칼로 형상화됐다.

종래 변호사 선임과 변론과 관련해 브로커 관행, 전관예우 등이 논란이 돼 왔다. 그런데 근래 판검사들이 직접 뇌물을 받은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현직 판사가 사채업자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법과 정의를 세우는 데 모범을 보여야 할 법조인들의 행태가 심히 우려스럽다. 정의의 여신이 가지고 있는 저울과 눈가리개를 집어던지고 칼만 들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들은 이제 법조삼륜(法曹三輪) 어느 쪽을 믿으란 말인가.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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