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이 근대를 열었고 그로 인해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현대는 정보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단지 시대를 구분 짓는 차원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세상은 큰 질적인 변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직종이 생겨나고 도저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부가 창출된다. 엄청난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나 굉장한 유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큼 정보를 움켜쥔 사람도 많은 부를 소유하게 된다. 아니 그 이상의 부를 소유한다.
더군다나 그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 소유자의 금고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천하에 드러나 있고, 오히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같이 소유하자고 꼬드긴다. 사람들은 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영토(사이트)에 들어가서 정보를 공유하고, 영토(사이트)의 주인은 부자가 되는 것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냥 허공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를 통해 그런 부가 창출된다는 것이…물론 이런 재미있는 부의 지도는 인터넷 환경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 같은 부품들과 컴퓨터의 기술력이 바탕을 깔아주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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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바그다드 호수에 비추는 물방울 형태를 모티브로 한 급진적인 디자인의 새로운 바그다드 도서관 조감도. |
학생 때 건축을 공부하면서 과제를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부대꼈지만, 눈이 휘둥그레지게 훌륭한 건축 사진이 듬뿍 들어있는 고가의 작품집들을 사야 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물론 좋은 지질에 솜씨 좋은 사진작가가 찍고 훌륭한 편집과 화려한 장정을 하였으니 값어치를 했을 것이지만, 여유라곤 없는 학생 신분으로서는 계속 새롭게 나오는 잡지나 작품집들을 접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있는 참고열람실을 자주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눈으로 열심히 익히거나 손으로 베껴 그려보기도 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그 화려한 사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아∼ 저 이미지들을 소유하고 싶다.” 그건 지적 갈구와는 조금 다른 욕망이었는데, 당시에는 그 이미지들을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내 휴대전화에서 열람하고 내 휴대전화로 불러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가뭄에 내리는 한 줄기 빗방울처럼 귀하거나 달지 않다. 그럴 때 정말로 보편적으로 평등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긴 한 모양이구나 실감이 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서인지 정보가 쌓이지 않고 그냥 흘러 다니기만 한다.
지식도 넘쳐난다. 내가 마음을 먹고 눈을 뜨고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내가 원하는 이상의 정보를 얻고 지식을 넓힐 수 있다. 문제는 넘쳐나는 지식들이 세상의 수준을 올려놓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잘 정리되고 소화되지 않은 지식의 과잉은 지식기술자들을 양산하고, 세상은 제대로 엮여지지 않은 파편화된 지식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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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지혜의 집’으로 일컬어지는 무스탄시리야대학. |
지식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사리를 분별하게 해주며 사상으로까지 이끌어준다. 그러나 자칫 수단이 되어 무기처럼 휘두를 때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때 지식과 구분되며, 분별과 분석을 초월한 종합적인 인식을 지혜라고 한다. 모든 종교나 사상을 통해 지혜는 인간이 앎에 이르는 최고의 단계로 정의했다. 서양의 철학에서 찾아본다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모든 앎의 다양한 형태들을 구분한 다음, 그 최상의 단계를 ‘지혜’로 규정했다. 지혜는 최상의 원리들과 원인들에 대한 앎이다. 다시 말해 가장 종합적인 경지이며 최상의 인식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혜(sophia)를 사랑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philosophia’는 서양에서 철학을 일컫는 단어인 ‘philosophy’의 어원이다.
불경 중의 불경이자 부처님의 말씀의 핵심이라고 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반야’는 최고의 지혜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사물의 도리나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고, 그 단계는 어디에도 사로잡힘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바라밀다는 어딘가에 도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반야심경은 참된 지혜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경전이라 생각하고 읽다보면 공(空)에서 시작해서 공으로 끝나는 허무한 이야기이다. 지혜는 공을 알게 된다는 것인데 그것 참 묘하다. 결국 지혜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텅 빈 상태란 말인가.
작년 여름에 ‘루시’라는 영화를 봤다. ‘제5원소’, ‘레옹’이라는 영화를 감독했던 뤼크 베송이 연출했고, 우리나라 배우 최민식과 할리우드의 인기배우 스칼릿 조핸슨 등등 배역도 화려해서 영화를 열심히 봤다. 루시라는 어떤 평범한 여자가 본의 아니게 범죄조직에 엮여서 마약을 운반하게 되는데, 마약은 수술을 통해 루시의 몸 안에 넣어진다. 그런데 약간의 사고가 발생해서 그 마약이 몸 안에서 터져버리고 이상한 화학 작용이 일어나면서 루시의 두뇌 활용 능력이 폭발적으로 배가된다. 10%, 20%, 30%…루시의 두뇌 활용능력이 높아질수록 불가사의한 초능력이 발휘된다. 배우지도 않은 지식이 책을 한 번 일별하면 모두 체득이 된다든가 방송과 무선통신 등 정보망을 통제하게 된다든가 하면서, 예상했던 대로 루시는 초능력으로 악당을 물리친다. 결국 루시의 두뇌활용능력은 100%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보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결말은 허무하게도 루시의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루시가 이야기한다. “나는 어디에나 있다.(l AM EVERYWHERE.)”
물론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두뇌의 능력이 최고가 되는 단계는, 없는 것이고 또한 어디에도 있는 것이란다. 말하자면 반야심경에서 이야기하는 공의 상태다. 영화적인 완성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그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것이었다.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 무한한 지식의 바다를 표류하는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것들을 쉽게 알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걸러내고 담아내는 과정을 소홀히 한다. 정보전달자는 많아도 지식인은 드물고, 참다운 지혜를 가진 이는 더더욱 찾기 어려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혜를 모은 집이라고 하면 당연히 도서관이 떠오른다. 역사에 등장한 중요한 도서관들이 많지만 정말로 ‘지혜의 집’(바이틀 히크마·Baital-Hikma)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도서관이 9세기 경 바그다드에 세워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혜의 집은 단순히 도서관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철학자들과 작가, 번역가들, 과학자들 등등이 모여 전 세계의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했던 그야말로 지혜의 전당이었다. 이곳에서 그리스와 동양의 중요한 철학서와 과학서가 아랍어로 번역되었는데,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학자들의 많은 저술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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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S에서 설계한 4만5000㎡ 규모의 뉴 바그다드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공간 열람실을 포함해 280만권의 책을 수용할 수 있다. |
지혜의 집을 세운 사람은 이슬람 문화의 전성기로 여겨지는 압바스(Abbasid) 왕조의 칼리파(신의 사도의 대리인. 이슬람 왕국의 최고 통치자를 이름) 하룬 알 라시드(Harun Al-Rashid, 786∼809)다. 그는 학자와 문인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고 유명한 학자들은 궁궐에 초빙하는 등 문예를 중시한 통치자였다. 그는 또 우리가 어릴 때 즐겨 읽었던 ‘천일야화’에 등장하기도 했는데, 종종 재상 자파르와 동행하여 밤거리를 다니며 모험을 했던 아라비아의 왕이 바로 그였다. 이야기 속에서는 소탈하고 유쾌하고 사리판단을 잘하는 이미지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어느 날 갑자기 재상의 가문을 몰아내고 독재를 한 변덕스러운 왕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가 세운 지혜의 집에서는 동서양의 중요한 저작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그 아들인 알 마문 또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한다. 서점이나 학교 등의 교육기관이 융성하면서 바그다드는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당시 바그다드의 인구는 100만명에 육박했다. 여기서 번역된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약학, 약리학, 지리학, 농경학 등과 철학 분야의 그리스 서적들과 인도, 페르시아의 학문적 성과까지 더해지며 중세 이슬람 과학은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258년 칭기즈칸의 후예인 몽고군의 침략으로 바그다드 전체가 파괴되었고 무려 80만명이 학살되었으며 수많은 책들이 불타 티그리스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지혜의 집, 바이틀 히크마는 750여년 전에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바그다드에 남아 있었다. 지혜의 집을 인터넷에서 찾을 때 나오는 고전적인 건물의 이미지가 있는데, 한 곳은 압바스 왕조의 성이고 또 하나는 무스탄시리야 대학(mustansiriya university)의 사진이다. 압바스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였던 제37대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가 1233년에 완성한 무스탄시리야 대학은 안뜰을 중심으로 날개가 펼쳐진 2층 건물이다. 건물 안에는 강의실, 학생들의 숙소, 도서관, 주방, 목욕탕, 병원, 약국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이 대학의 도서관에는 8만여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습과정에서 바그다드 주변의 수많은 유적들이 손상되고 박물관 등 문화시설들이 파괴되었는데, 3000여권의 희귀본이 소실되거나 약탈된 국립도서관도 포함되어 있다. 도서관에 보존 중이던 지혜의 집에서 번역한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저작을 비롯한 역사 관련 서적의 60%, 기타 자료의 25%가 훼손되었다고 하니 천년 동안 어렵게 쌓은 문화유산을 한순간에 파괴하는 그 어리석음이 한탄스럽기만 하다.
문명과 지혜의 발원지에서 폐허로 되돌아간 바그다드에 2011년부터 새로운 도서관 건축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AMBS에서 설계한 4만5000㎡ 규모의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공간 열람실을 포함해 280만권의 책을 수용할 수 있다. 호수에 비추는 물방울 형태를 모티브로 한 급진적인 디자인의 새로운 도서관은 정보와 표현의 자유, 문화의 다양성과 투명성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비록 건립 자본을 비롯해 보안과 전기, 물 공급, 숙련된 노동력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대한 도서관 유산을 가졌던 이라크의 지식의 인프라를 되살리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지혜를 갈구하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식의 탑을 쌓는다. 그러나 번번이 그 탑은 허무하게 스러진다. 그건 어쩌면 지혜란 ‘있음’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지혜의 소리’라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많은 곳에 지혜의 탑을 만들고 있다. 역사에서 지혜의 집이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없어지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을 되새겨 보면서 깨닫는다. 지혜라는 것이 없는 것, 혹은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도 그 한계를 알면서도 계속 쌓아올리는 노력, 어쩌면 그것이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여정이라는 것을.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곳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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