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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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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0 21:37:40 수정 : 2015-01-20 21: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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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10분, 여왕 폐하의 충용한 경기병 부대가 적진으로 돌진했다. 러시아군 야포가 불을 뿜고 말과 병사들이 쓰러졌으나, 기병들은 군도를 휘두르며 적진을 헤집었다. 적을 괴멸시킨 기병대가 되돌아서는 순간, 측면 언덕에 매복한 적이 집중사격을 가했다. 11시35분, 죽거나 죽어가는 병사만 남았을 뿐 적과 마주선 영국군은 한 명도 없었다.”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을 취재한 영국 ‘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이 쓴 최초의 전쟁 보도 기사다.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온전히 전한 러셀은 ‘종군기자의 아버지’로 불린다. 기사를 본 나이팅게일이 현장으로 달려가 적군과 아군 가리지 않고 부상병을 돌봤고, 전후 적십자 설립으로 이어졌다.

한 줄의 전쟁 기사와 사진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사례는 많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6월8일,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마을에서 어린 소녀가 벌거숭이로 내달리며 울부짖는 모습이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폭로한 이 사진은 미국의 반전 분위기를 고조시켜 종전을 앞당겼다. 6·25전쟁에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였던 마르그리트 히긴스는 ‘한국전쟁(War in Korea)’이란 책을 펴내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는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활약상을 전하며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다”고 극찬했다. 해병대가 ‘귀신 잡는 해병’이 된 것은 순전히 그의 공이다.

종군기자 경험을 문학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유명 작가가 드물지 않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37년 스페인내전 때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그 전쟁 경험은 불후의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바탕이 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곳이 전쟁터다. 국민의 알권리 보호와 진실 보도의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종군기자다.

생사를 돌보지 않는 기자정신을 ‘카파이즘’이라고 한다.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름에서 따왔다. 짧은 생애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전쟁터를 누빈 카파는 1954년 베트남 독립전쟁 취재 도중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지난해 7∼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언론인 17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종군기자들의 직업정신이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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