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을 취재한 영국 ‘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이 쓴 최초의 전쟁 보도 기사다.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온전히 전한 러셀은 ‘종군기자의 아버지’로 불린다. 기사를 본 나이팅게일이 현장으로 달려가 적군과 아군 가리지 않고 부상병을 돌봤고, 전후 적십자 설립으로 이어졌다.
한 줄의 전쟁 기사와 사진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사례는 많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 6월8일,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마을에서 어린 소녀가 벌거숭이로 내달리며 울부짖는 모습이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폭로한 이 사진은 미국의 반전 분위기를 고조시켜 종전을 앞당겼다. 6·25전쟁에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였던 마르그리트 히긴스는 ‘한국전쟁(War in Korea)’이란 책을 펴내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는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활약상을 전하며 “귀신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용감했다”고 극찬했다. 해병대가 ‘귀신 잡는 해병’이 된 것은 순전히 그의 공이다.
종군기자 경험을 문학적 자산으로 승화시킨 유명 작가가 드물지 않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37년 스페인내전 때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그 전쟁 경험은 불후의 명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바탕이 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곳이 전쟁터다. 국민의 알권리 보호와 진실 보도의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종군기자다.
생사를 돌보지 않는 기자정신을 ‘카파이즘’이라고 한다.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름에서 따왔다. 짧은 생애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전쟁터를 누빈 카파는 1954년 베트남 독립전쟁 취재 도중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 지난해 7∼8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언론인 17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종군기자들의 직업정신이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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