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면 커서 정상적 사회생활 불가능할 수도
약물·정신치료 병행… 놀이를 활용한 치료 효과 네 살배기 딸을 태우고 운전대를 잡은 직장인 이모(36·여)씨는 차 안에서 울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하다가 그만 신호등 앞에서 급제동을 한 앞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이나 외상은 없었으나, 이씨보다 더 문제가 된 건 충돌 당시 조수석에 앉아 있던 딸아이였다. 사고 다음 날부터 한 달 넘도록 사소한 일에 칭얼거리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엄마에게 “먹여 달라”며 보채기도 했다. 특히 사고 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다 깨 우는 일이 잦아졌다.

“어린 아이는 자기표현이 아직 서툴다 보니 부모 입장에선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을 텐데요.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러운 충격 이후 아이가 초조하고 예민해져 작은 일에 지나치게 짜증을 내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아진 경우, 자동차를 무서워하고 차를 타려 하지 않는 경우 등은 PTSD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럴 때는 아이의 행동이 평소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눈여겨봤다 꼼꼼히 기록해두는 게 좋습니다.”
한 교수에 따르면 가장 유용한 방법은 교통사고와 관련된 내용이 아이의 놀이에 표현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장난감 자동차가 서로 부딪히는 놀이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사고 후 처리 과정을 재현하는 듯한 놀이를 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 밖에도 사건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경우, 자주 움찔움찔 놀라거나 전보다 두드러지게 활동이 많아지고 행동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이별 불안을 나타내는 경우 PTSD를 의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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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상대로 의료진이 그네놀이를 활용한 치료를 실시하고 있다. 어려서 겪은 교통사고의 충격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발전할 수 있는 만큼 부모의 세심한 관찰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 제공 |
사고 발생 후 곧바로 증상이 나타나면 오히려 발견과 치료가 쉽다. 문제는 사고 이후 여러 달, 심지어 여러 해가 지난 뒤 증세가 발생하는 경우다. 한 교수는 “PTSD가 잠복했다 나중에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사고 후 아이한테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가급적 진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며 “나이가 어리거나 다른 질환을 동반한 경우라면 증세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PTSD 치료는 통상 약물 치료와 정신 치료를 병행한다. 약물 치료는 ‘선택적 세로토닌제 흡수억제제’를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PTSD뿐만 아니라 다른 불안이나 우울 증상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한 교수는 “어린 아이는 정신 치료 중에서도 놀이를 활용한 치료의 효과가 크며, 비슷한 또래끼리 모아 놓고 하는 집단 치료와 온 가족이 동참하는 치료 등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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