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를 틀고 서늘히 웃던 이동의 모습은 작품 속 오롯이 두고 나왔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백도빈은 반짝이는 맑은 눈을 가진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였다.
백도빈은 묵직하고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사극에 최적화된 배우라 일찍이 눈길을 모았다. 그리고 ‘어우동’을 통해 서늘함과 치졸함을 완벽히 입은 기루의 왕이자 조선시대 대표 양반 ‘이동’을 섬뜩하게 표현해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어우동:주인없는 꽃’은 사랑이라 믿었던 남편(백도빈 분)에게 배신당한 혜인(송은채 분)이 복수를 위해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어우동’이라 이름 지어 조선에서 최고로 유명한 기녀로 새롭게 태어나 복수의 꽃을 피우는 역사적 스캔들. 백도빈, 송은채, 여욱환, 유장영 등이 출연한다.
이미 백도빈은 영화와 드라마를 가릴 것 없는 긴 단역을 거쳐 드라마 ‘선덕여왕’과 ‘무신’으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작성해왔다. 하지만 한 아내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동을 표현해내려는 파격적인 이번 도전은 꽤 오랜 고민이 됐을 것이다.
“당연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것 보다는 극중 베드신이나 노출 부분이 작품상에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요소로서 인식이 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관객 분들과 소통을 했던 적이 없습니다. 내 스스로에게도 도전적인 부분이 있어서 고민도 했지만 그래서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책(대본)을 보고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제일 좋았던 건 타이틀만 봤을 땐 알다시피 어우동이라는 여인에 대한 의식이었지만 깊숙이 들어가서 보니 막연하게 알았던 지식들과 다른 인물이더라고요. 전달해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했던 건 애초에 타이틀이나 소재에서 가져온 편견이 있다는 것이었고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다가갈지가 숙제였습니다. 기대했던 대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 다소 편향될 수 있는 지점들과 우려했던 걱정이 다행스럽게도 잘 내포돼서 전달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 19금, 첫 베드신, 사극, 그리고 바람둥이.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을까.
“매번 작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이 대하 사극 같은 형태라 도움을 받은 부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색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할 때마다 새로운 지점이 있어요. 정서나 느낌은 있지만 다른 지점들이 분명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성들하고 주로 부딪히거나 격렬하게 대립하는 지점이 많았는데 여성 연기자들과 정서적인 교류를 나눴던 작품은 연기 생활을 통틀어서 이번이 처음이에요.(웃음)”
“많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문제가 오늘 날에 있어도 맥락을 같이 했다고 생각해요.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스스로가 선택하는 ‘주인없는 꽃’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 주제 관통하는 부분이 있는 거고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의지대로 살고는 있지만 의지가 제대로 발현이 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우동으로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했고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이 높이 사고 싶습니다. 관객들에게 메시지로서 되묻고 싶고 전달해주고 싶은 이야기고요.”
아버지 백윤식과 자신의 뒤를 따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생 백서빈, 그리고 아내 정시아까지.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가족들의 영향이 실생활에서도 작용했을 터.
“화제로 영화든 드라마든 콘텐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개입은 안하고 존중을 해줍니다. 그래도 가족들이 안보는 척 하면서 드라마든 영화든 모니터를 해주고 지나가는 말로 서로 해주고 있더라고요. 그 안에 관심이 있는거죠.(웃음) 작품선택에도 직접적인 건 없지만 아내가 책(대본)을 객관적으로 같이 봐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런 책이 왔는데 시간 있는 분은 모니터링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슬쩍 말하기도 하고요.”
“가장 압축적으로 이야기 해 주시는 건 아버지이신 것 같습니다. 한 두 마디 정도로 압축해서 말씀해 주시는데 그 안에 많은 메시지가 있어요. 초반에 단역부터 이야기를 쭉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말들도 기억나는 게 많습니다. 상투적인 말일수도 있는데 배려에 대한 말을 해주셨어요. 그 것이 지금 연기하는데도 큰 귀감이 됩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백도빈은 어떤 남편이자 아버지일까. 시대가 만든 나쁜 남자 이동을 막 벗어난 그였기에 더 궁금하다.
“극중 이동과 제 실제 성격은 180도 다르죠. 전 되도록이면 아내와 육아든 집안일이든 같이 함께 하려고 합니다. 그 시간이 저에겐 소중하고 감사하더라고요. 60점은 되지 않나 생각해요. 제가 웬만하면 다 하려고 합니다. 아이의 수행비서처럼요. 그 자체가 즐거워요. 그런데 집안일은 노력한 거에 비해서 도드라지게 티가 안나더라고요. (웃음)”
“앞으로 다른 거보단 이 분야에서 경중을 떠나서 오랫동안 쓰임이 있는 ‘요소’로 남고 싶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롤모델이 되실 분은 아버지시고요. 30년 가까이 한 일에서 종사해 오신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역이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쓰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아요.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생산을 해 내고 쓰임이 있는 것, 그게 제 꿈이라면 꿈이고 목표라면 목표입니다.(웃음)”
이린 기자 ent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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