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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의 한국공원 "6·25 참전기려" -김슬기라 리포터의 터키견문록·끝

입력 : 2015-01-08 21:03:06 수정 : 2015-01-12 09: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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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의 짧았던 여정이 끝나가고 있다. 지난해 9월 교환대학생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 학기가 지나갔다.

처음 터키를 만났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국경 통과 지점에서 내렸다. 길게 줄을 서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됐을 때 사무소 직원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딱딱한 표정으로 한참을 응시하기에 터키어로 더듬더듬 “벤 외렌지임(저는 학생이에요)” 했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갯짓으로 그냥 가란다.

앙카라 한국공원내 석가탑을 본떠 만든 위령탑이 우뚝 서 있다.
순간 터키라는 나라가 무서울 거라는 생각으로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얼마 안 가 또 내리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는 불가리아 출국 심사대였고 이번엔 터키 입국 심사대란다. 잠시 경직됐던 분위기에 잔뜩 긴장하고 조용히 여권을 내밀자 직원이 웃으며 묻는다. “스튜던트?” 그러면서 그 깊고 진한 눈이 더 환하게 열린다. 내가 만난 터키의 첫 모습이었다. 이후로 난 터키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됐다. 첫 번째 터키견문록에서 코눅세베르(터키의 손님 환대 문화)에 대해 얘기했지만 내가 경험한 따뜻함은 사실 코눅세베르 이상이었다.

터키에서 카르데쉬 윌케(형제의 나라)라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들었다. 특히 터키 어르신들은 한국인이라고 하면 유난히 반가워하며 카르데쉬 윌케를 말씀하시곤 했다. 바르쉬라는 터키 친구가 흑해 연안 도시인 삼순의 고향 집에 초대해준 적이 있었다. 바르쉬는 예전에도 다른 나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었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께 한국 친구들이 집으로 올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셨어. 드디어 내 아들이 제대로 된 일을 하는구나! 형제의 나라에서 온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터키의 코눅세베르를 보여 줄 기회”라면서 그 무뚝뚝하신 아버지가 아이처럼 좋아하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르쉬 집 바로 옆으로 지나는 길이 코레 소칵(한국 길)이라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이보다 더 놀라운 건 6·25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터키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 한복판에 한국공원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청사초롱, 한글 현판, 울타리마다 박힌 태극기, 석가탑을 본떠 만들었다는 위령탑이 있어 터키 안에 작은 한국을 옮겨다 놓은 듯하다. 여기에 한류 열풍까지 거세 한국을 더 친근하게 여긴다.

10대 소녀는 물론 20대 청년부터 60대 할머니까지 한국드라마를 보지 않는 층이 없고 특히 젊은이들의 한류에 대한 열정은 놀라울 정도다.

코리아팬스(www.korea-fans.com)를 비롯해 수십개의 한류 팬 커뮤니티가 방대하게 형성돼 있고 앙카라에 있는 한국문화원에는 한 달 평균 2000명의 터키인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빌켄트 캠퍼스에서도 스마트폰으로 한국드라마를 보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으며 터키 백화점에서는 나도 모르는 한국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류에 빠진 터키인들은 대중문화를 넘어 한국 전반에 대해 관심이 있다.

가장 친한 친구 세레나이도 그렇게 만났다. 서로 한국어와 터키어를 가르쳐주고 언어 교환을 해 줄 사람을 찾다가 소개받았다. 세레나이는 K-팝을 듣다가 한국을 좋아하게 돼 지금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 교환학생도 준비 중이다. 처음에는 ‘대중문화일 뿐인데 너무 과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세레나이가 K-팝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 아이돌들은 자기 멋대로 사는 데 반해 한국의 아이돌들은 연습도 열심히 하고 예의 바르고 팬들에게도 성의 있게 대하잖아. 난 그 태도가 좋다”고 설명했다.

세레나이의 한국 사랑이 내게도 우리나라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짧은 시간 터키를 정들게 만든 건 사람이었다. 늘 적극적으로 나서 도와주고 친근하게 다가왔던 그 사람들이 앞뒤 재고 대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국을 좋아해 준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을 뿐이다.

앙카라=김슬기라 리포터 giraspir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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