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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명수 중위. |
6.25전쟁 당시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리며 사병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이명수(88) 중위가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육군은 6일 육군장(裝)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명수 중위의 영결식을 육군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장의위원장을 맡아 8일 오전 분당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영결식을 열고 같은날 오후 1시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봉안식을 갖는다.
중위 이하 계급에서 육군장을 거행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1946년부터 1962년까지 육군은 병(이등병, 일등병)과 하사관(하사, 이등중사, 일등상사, 특무상사) 계급을 사병이라 불렀다.
고인은 1946년 10월 병사로 자원입대해 1950년 6.25전쟁 발발 수개월 전에 전역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재소집된 고인은 일등상사로서 3사단 22연대 3대대 소대장 대리로 복무했다.
1950년 7월28일 영덕지구 전투에서 특공대장에 임명되어 대원 12명과 함께 적진에 침투해 육탄으로 적 전차 3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워 ‘탱크잡이의 명수’로 불렸다.
이후 다시 적진에 침투해 작전 도중 적에게 생포된 부하 3명을 구출했다. 고인과 특공대원들은 결사전을 통해 적의 포항 진출을 2주일 이상 지연시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고인은 이런 공훈을 인정받아 1951년 7월26일 사병으로는 최초로 군인에게 가장 영예로운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육군 3사단은 고인을 부대 정신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리고 있다.
1954년 장교로 지원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으며 제6군단 수송중대장을 역임하고 1963년 중위로 전역했다.
2013년에는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인민군 전차 딛고 선 영원한 일등상사’라는 자서전이 출간됐다. 병상에 누워있는 고인을 대신해 아내 최순일(85) 여사가 기록을 찾고 고인의 기억을 받아 적었다. 국방부는 장병 참고도서로 이 책을 부대에 보급하기도 했다.
6·25전쟁 기간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군인은 60여명이다.
육군은 2011년 10월 육군장 대상 규정을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중 전사자’서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로 개정하고, 낮은 계급에서도 큰 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을 예우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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