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와 축서사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두 절집 모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의상대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축서사를 짓고 나서 3년 뒤 부석사를 지었다. 규모는 부석사가 훨씬 더 크지만, 산자락에 일자로 뻗은 축을 따라 양 옆에 가람을 배치한 양식도 흡사하다. 절집 문루에 오르면 소백산맥의 연봉이 시야에 가득 차는 점까지도 유사하다. 그래서 3년 먼저 지어진 축서사는 ‘부석사의 큰집’으로도 불린다.
부석사는 세밑에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만한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무량수전 앞에서 마주하는 소백산맥의 해넘이는 우리 땅에서 장엄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부석사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축서사의 소백을 붉게 물들이는 저물녘 풍경 역시 부석사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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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으로 꼽히는 경북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옆에서 마주한 해넘이 풍경. 눈 덮인 안양루 너머 저무는 해가 소백산맥의 능선을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지난 한 해의 묵은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는 각오를 다지기에 이만 한 곳도 없을 것이다. |
축서사의 건물들은 아쉽게도 부석사처럼 오랜 연륜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조선 말에 큰 화재가 있었고, 일제 강점기 때 의병을 토벌한다며 불을 놓아 전소됐다. 현재 ‘보광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대웅전을 빼고는 모두 새로 지은 것들이다. 축서사에서 만난 70대 할머니에 따르면 자신의 젊은 시절, 축서사는 대웅전과 달랑 초가 한 채만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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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봉화 축서사 진신사리 오층석탑 앞에서 기도 드리는 할머니. |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자락에 자리한 부석사는 아름답다는 경탄을 넘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절집이다. 우리 땅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부석사는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 절집 건축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위대한 건축’이라고 극찬한 것도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유홍준이 설명한 대로 부석사는 불교 교리의 상징체계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의상대사는 천왕문에서부터 크게 삼단씩 이뤄진 세 개의 계단, 즉 모두 아홉 단의 돌계단을 만들어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무량수전에 이르도록 했다. 이는 극락세계에 이르는 9품 만다라, 즉 9단계를 상징한다.
눈밝은 사람이라면 천왕문에서부터 여섯째 계단의 범종각까지 남서향으로 곧게 뻗은 축이 일곱째 계단부터는 왼쪽으로 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그 위 안양루는 좀 더 왼쪽으로, 무량수전은 더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왜 그랬을까. 여섯째 계단까지는 지형에 순응해 남서향으로 지었으나, 무량수전은 최대한 정남향이 되도록 축을 굴절시킨 것이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옆에 서자 소백의 능선과 절집 건물 위로 웅혼한 해넘이가 펼쳐진다. 이 절집에 담긴 깊은 의미를 들었기 때문일까. 이번 석양은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감동은 어느새 감사와 용서, 그리고 새해를 향한 의지와 용기로 이어진다.
영주·봉화=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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